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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정수 - 윌리엄 에임스(16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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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저술의 목적에 관한 저자의 짧은 머리말
악의로 말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모두 헤아릴 수 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참으로 선한 뜻에서 시작한 이 작업이 시대의 풍조에 따라 여러 비판을 받으리라는 것을 내다본다. 그중 중요한 몇 가지에 간략히 답하고자 한다.
학식이 부족하지 않은 이들 중에도 신학 전체를 짧은 개요에 담는 집필 방식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마음껏 머물거나 돌아다닐 수 있는 방대한 책을 원한다. 그들에게 한 가지를 헤아려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누구나 산과 숲에서 자고새를 사냥할 만큼 여유가 있거나 재주가 뛰어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에게는 그들이 찾는 새의 둥지, 곧 탐구하는 문제의 핵심을 곧바로 보여 주는 편이 더 알맞다.
주요 주제를 수사적으로 풀어내기만 하면 이런 방식을 싫어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세세한 점마다 그렇게 정확히 따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1 그러나 말이 급류처럼 흘러가면 온갖 것을 휩쓸고 가더라도, 독자가 붙들거나 건질 수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다. 어디에 발을 딛고 굳게 설 수 있는지도 알기 어렵다. 일정한 원칙이 제시되면 독자는 걸음마다 발 디딜 곳을 찾을 수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체계와 논리적 형식을 갖추려는 노력을 까다롭고2 번거롭다고 비난할 것이다. 그들이 더 건전하게 판단하기를 바란다. 그들은 무엇보다 이해하고 분별하며 기억할 가치가 있는 일에서, 바로 그 일을 돕는 기술을 없애려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논리의 기술에서 더 엄밀함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 부족함 때문에 원한다 해도 그들을 온전히 만족시킬 수는 없다. 더욱이 다른 이들의 연약함을 생각하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까지 논리적 엄밀함을 밀어붙일 생각도 없다. 이미 많은 학자가 같은 종류의 저작을 남겼으니 이런 교본을 펴내는 일은 불필요하고, 이미 한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저작 가운데 모든 사람을 모든 면에서 만족시키는 것이 이미 있다면 나도 기꺼이 그렇게 생각하겠다.
그렇다고 내가 이 글이 그런 책이 되리라고 기대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지는 말라.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없다. 다만 두세 사람이라도 이 책을 접하여, 다른 이들의 더 학식 있는 저술에서 본 것보다 자신을 가르치고 경건으로 일깨우기에 더 알맞은 것을 여기서 발견하리라는 희망은 있다. 이 짐작이 빗나가지 않는다면, 수고할 만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겠다.
이 분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글이 모호하다고 비난할 것이다. 나는 그들이 키루스에게서 이 말을 배우기를 바란다. 햇빛이 넓은 창에 퍼질 때에는 그 빛이 그다지 기분 좋지 않다. 한곳에 모인 빛은 작아 보일지라도 가까이 다가가 살피면, 지나치게 넓어져 흩어진 빛보다 더 밝게 비춘다.
같은 사람들은 문체가 메마르고 몇몇 말이 거칠다고 크게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이런 ‘이단’을 따르겠다.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라면 한 마디로 할 수 있는 말을 두 마디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물쇠를 가장 잘 여는 열쇠를 골라야 한다. 같은 효력을 내는 금 열쇠가 없다면 나무 열쇠라도 좋다.
마지막으로, 특히 이 『신학의 정수』 후반부의 실천적인 문제들을 더 자세히 설명해 주기를 바라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지금 뜻을 두고 있는 별도의 논고에서 흔히 양심의 문제라 불리는 질문들을 다루어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한다.
여전히 이 책에 부족한 점이 있다고 여기거나 다른 내용을 원하는 분이 계시면, 그 생각을 솔직하게 알려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그 의견은 마땅한 해명을 하거나 필요한 부분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각주

1
곧 그만큼 정밀하게, 정확하게 또는 세밀하게 한다는 뜻이다. ↩
2
까다롭거나 모호하다는 뜻이다. ↩
◀ 읽기에 앞서: 17세기 영어의 차이점1 / 64제1장 신학의 정의 혹은 본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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