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죄책이란 죄인이 자기 잘못으로 마땅한 형벌을 받아야 할 의무에 매이는 것이다. 레 5:2–5. 그에게 죄책이 있다. 롬 3:9. 우리가 모두 죄 아래 있음을 입증했다. 19절. 온 세상이 하나님 앞에서 죄책 아래 있다. 고전 15:17. 너희가 여전히 너희 죄 가운데 있다.
2 누구든지 부정한 들짐승의 사체나 부정한 가축의 사체나 부정한 곤충의 사체들 무릇 부정한 것을 만졌으면 부지중에라 할지라도 그 몸이 더러워져서 허물이 있을 것이요
3 혹시 부지중에 사람의 부정에 다닥쳤는데 그 사람의 부정이 어떠한 부정이든지 그것을 깨달을 때에는 허물이 있을 것이요
4 혹 누구든지 무심중에 입으로 맹세를 발하여 악을 하리라 하든지 선을 하리라 하면 그 사람의 무심중에 맹세를 발하여 말한 것이 어떠한 일이든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달을 때에는 그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것이니
5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범과하였노라 자복하고
로마서 3:9
9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고린도전서 15:17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3. 그러므로 잘못의 죄책과 형벌의 죄책을 구분하는 일이나, 로마 가톨릭 교도들이 형벌의 면제와 잘못의 용서를 구분하는 일은 실제 차이가 없는 구분이다.
4. 죄책은 죄를 성립시키는 형상이 아니다. 죄에 따르는 성질 또는 결과로 수반되는 것으로서, 어떤 점에서는 분리될 수 있고 어떤 점에서는 분리될 수 없다.
5. 죄책이 죄를 따르는 것은 한편으로 하나님의 율법이 죄에 형벌을 선고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죄책에는 선한 면이 있으며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이 뜻에서 하나님은 죄책을 죄에서 떼어 놓으실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죄책은 죄에서 나오고 형벌을 받기에 합당하다는 것을 뜻하므로, 죄의 성격을 띠는 악한 것54이기도 하다. 이 뜻에서도 죄와 분리될 수 없다. 죄책에 관한 이 두 관점은 다음 말씀에 암시되어 있다. 롬 1:32.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죽어 마땅하다는 하나님의 법을 안다.
11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요한계시록 22:11
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8. 이 오염은 범죄에 곧바로 뒤따르며, 죄의 행위가 지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도 죄인 안에 남는다. 이를 죄의 얼룩, 부패, 더럽힘, 추함, 불명예, 벌거벗음, 부정함, 오점이라 하며, 때로는 culpa, 곧 잘못이라고 부른다.
9. 이 오염에서 두 가지가 따른다. 첫째, 하나님에게서 돌아섬이다. 사 1:15. 이를 가증함과 혐오라고도 하며(잠 1:32), 특히 더 큰 죄에 관하여 그렇게 말한다. 잠 3:16. 렘 16:18. 둘째, 사람을 당혹하게 하는 부끄러움이다. 창 3:7. 이런 부끄러움은 자신에게 어떤 더러움이 있음을 아는 데서 나오는 두려움이다. 롬 6:21. 너희가 지금 부끄러워하는 일들에서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17. 형벌을 정하시는 일에는 하나님의 여러 속성, 특히 거룩함과 공의와 자비가 드러난다.
18. 가장 넓은 뜻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은 그분이 모든 불완전함에서 벗어나 그것과 구별되신다는 것이다. 사 6:3. 계 4:8. 그러나 형벌에서 특별히 드러나는 거룩함은, 하나님께서 죄의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하시므로 어떤 죄와도 함께하실 수 없다는 것이다. 시 5:5. 주는 불의를 기뻐하는 능하신 하나님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거하지 못한다. 합 1:13. 주의 눈은 너무 깨끗하여 악을 보실 수 없다.
20. 이 공의가 죄를 향하여 타오른다는 점에서는 진노라 부른다. 롬 1:18. 엡 5:6. 더욱 맹렬하게 타오른다는 점에서는 격노라 부른다. 신 29:20. 죄인에게 집행할 판결을 내린다는 점에서는 심판이라 부른다. 롬 2:5. 내린 판결을 집행한다는 점에서는 엄밀히 보응이라 부른다. 히 10:30.
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29. 이 죽음은 생명을 잃는 비참한 상태이다.
30. 사람의 생명이란 영혼과 몸이 결합하는 것뿐 아니라, 그 상태의 사람에게 알맞은 모든 완전함도 뜻한다. 그 완전함이 이미 주어졌든 조건에 따라 주어질 것이었든 모두 포함된다. 시 36:10 [개정본에는 시 36:9 표기]. 생명의 샘이 주께 있으니, 주의 빛 가운데서 우리가 빛을 누린다.
26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47. 이 죄들에 형벌의 성격을 돌리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그 결과로 사람의 죽음이 더 깊어지고 비참함이 커진다. 둘째, 사람이 죄를 지을 때 내적으로 고통을 겪고, 그로 인해 본성이 짓눌리고 더 비천해진다. 셋째, 앞선 죄로 사람은 의와 은혜, 곧 하나님의 도움을 빼앗기며, 그것이 없어서 뒤따르는 죄에 뛰어든다. 넷째, 앞선 죄는 사람이 뒤따르는 죄를 범할 성향과 준비를 갖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앞선 죄는 뒤따르는 모든 죄와 함께하거나 그 뒤에 오는 모든 악을 가져왔다.
각주
54
벌을 받아 마땅한 악덕에 속한다는 뜻이거나, 부패시키고 불완전하게 하며 더럽힌다는 뜻이다. 우리 안에는 죄 자체뿐 아니라 율법이 그 죄에 부과하는 죄책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