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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정수 - 윌리엄 에임스(16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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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자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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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까지 원죄를 다루었다. 이제 자범죄를 다룬다.
2. 자범죄란 사람의 행위가 바른 질서를 벗어난 것, 곧 하나님의 율법에서 이탈한 것이다. 요일 3:4. 행위가 지속적인 성향에서 나오고 개인의 잘못이 본성의 잘못에서 나오듯, 자범죄는 원죄에서 나온다. 이런 뜻에서 원죄를 죄의 불쏘시개, 곧 fomes peccati55라 부르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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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러므로 자범죄들은 그 대상이나 대상을 향하는 구체적 방식에서는 흔히 서로 반대되지만, 그것들이 나오는 근원이나 토대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약 2:10. 딤전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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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범죄는 여러 방식으로 구별된다. 첫째는 정도에 따른 구별이다. 어떤 죄는 다른 죄보다 크거나 작다. 겔 5:6, 8. 그가 내 규례를 이방인보다 더 심하게 바꾸었다. 겔 8:15. 너는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들을 보리라. 요 19:11. 그에게 더 큰 죄가 있다. 그러므로 형벌도 크거나 작다. 눅 12:47–48. 알고도 행하지 않은 자는 많이 맞고, 알지 못하고 행한 자는 적게 맞으리라. 마 11:2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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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도의 차이는 다음에 달려 있다. 첫째, 범죄한 사람이 누구인가이다. 민 12:14. 이로써 음행과 간음과 근친상간도 구별된다. 둘째, 행위의 종류와 본성이다. 마 5:21–22. 함부로 노하는 자, ‘라가’라고 부르는 자, ‘미련한 자’라고 말하는 자. 셋째, 행위의 강도가 얼마나 크거나 작은가이다. 빌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한 자. 딤전 1:13. 신성모독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다. 넷째, 범하는 방식이다. 무지나 연약함으로 범하기도 하고 고의로 대담하게 범하기도 한다. 민 15:27, 30. 사람이 부지중에 죄를 지으면 염소를 바칠 것이나, 고의로 범하는 자는 끊어지리라. 시 19:13–14. 고전 6:7. 너희에게 이미 허물이 있다. 다섯째, 장소나 때 등의 여건이다. 사 26:10. 악인은 은혜를 입어도 의를 배우지 않으며 정직한 땅에서도 악을 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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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둘째, 자범죄의 종류를 가르는 고유한 차이는 결여에 있다. 그 행위들이 벗어나는 올바른 기준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죄의 종류도 달라진다.
7. 따라서 죄가 하나님의 어느 계명을 거스르는지에 따라 나누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8. 셋째, 자범죄는 구성 측면에서 부작위의 죄와 작위의 죄로 나뉜다. 원죄에 선에서 돌아섬과 악으로 돌아섬이라는 두 측면이 있듯이, 그로부터 나오는 자범죄에도 두 측면이 있다. 선에서 돌아서는 점이 두드러지면 부작위의 죄, 악으로 돌아서는 점이 두드러지면 작위의 죄라 부른다.
9. 그러므로 부작위의 죄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약 4:17.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그에게 죄가 된다. 마 25:42. 내가 주렸을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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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작위의 죄는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이다.
11. 부작위의 죄는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거스르고, 작위의 죄는 하나님의 금령을 직접 거스른다. 작위의 죄는 하나님의 율법에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며, 부작위의 죄는 율법에서 무언가를 빼는 것이다. 둘 다 금지되어 있다. 신 4:2, 12:32. 계 22: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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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 구분은 죄를 별개의 종류로 나누는 구분이 아니다. 첫째, 탐욕의 경우처럼 같은 대상을 같은 관점에서 대하는 작위와 부작위는 종류가 다르지 않다. 둘째, 도덕적으로 말하면 앞서거나 동반되는 행위가 없는 부작위는 없다. 셋째, 부작위가 자발적이고 자유로우려면 행위가 있어야 하며, 그 행위에는 언제나 작위의 죄가 붙어 있다.
13. 넷째, 죄는 그것이 일어나는 자리에 따라 마음과 입과 행위의 죄로 나뉜다. 곧 율법을 거스르는 말이나 행위나 생각이다. 사 18:13 [개정본에는 사 29:13 표기]. 마 5:28,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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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다섯째, 죄는 그 대상에 따라 하나님을 거스르는 죄와 사람을 거스르는 죄로 나뉜다. 눅 15:18. 삼상 2:25. 그러나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전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성립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다는 점에서는 오직 하나님을 거스르는 범죄이지만, 죄로 흔히 사람에게 가해지는 손해와 피해라는 실제 측면에서는 사람에게도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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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여섯째, 죄는 결과에 따라 양심을 파괴하는 죄와 그렇지 않은 죄, 지배하는 죄와 죽임을 당한 죄, 용서받을 수 있는 죄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나뉜다. 이 구별들은 여기서 직접 다룰 사항은 아니다.
16. 죄가 이렇게 늘어나면서 영적 죽음은 박탈의 면에서도 고통의 면에서도 깊어진다.
17. 박탈의 면에서는 양심의 거짓 안도56와 무감각, 곧 죄와 비참함을 느끼지 못하는 일이 있다.
18. 이 거짓 안도는 죄짓는 습관과 죄 가운데 완고해진 마음에서 생긴다. 작위든 부작위든 날마다 죄가 쌓여 익숙하고 오래된 일이 되면 악한 습성이 생기고 의지와 마음에 굳은살이 박히는 것과 같다. 렘 13:23. 구스 사람57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바꿀 수 있느냐? 그렇다면 악을 행하는 데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엡 4:19. 그들은 감각을 잃고 자신을 방탕에 내주어 탐욕으로 모든 더러운 일을 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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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고통의 면에서는 절망과 결합된 극심한 양심의 공포가 있다. 히 10:26–27. 창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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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이 공포는 죄책이 크고 많으며 눈앞의 형벌을 피할 수 없다는 데서 생긴다.
21. 그러나 영적 죽음이 시작된 상태에서 하나님은 그 비참함을 어느 정도 억제하신다. 이 억제에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있다.
22. 내적 억제는 남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서 드러난다. 약 3:9. 이 흔적은 지성과 의지 모두에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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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지성에서는 이론적 판단과 실천적 판단을 이끄는 진리의 원리에서 나타난다.
24. 이론적 원리는 참과 거짓에 관한 것이다. 이성을 조금이라도 사용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에 대한 지식을 얼마간 지닌다. 롬 1:20. 시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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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실천적 원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의롭고 불의한지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께 예배해야 하고 자기가 당하기 싫은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예이다.
26. 이것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기록된 율법이다. 롬 2:15. 그들은 자기 마음에 기록된 율법의 작용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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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이 원리들에서 자연적 양심의 힘이 어느 정도 나온다. 롬 2:15. 그들의 양심도 함께 증언하고 그들의 생각은 서로 고발하거나 변호한다. 그러나 이 양심도 그 원리들과 함께 부패하여 죽어 있다. 딛 1:15.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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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의지에서 그 흔적은 이렇게 알게 된 선을 향한 일정한 성향으로 나타난다. 이 성향은 쇠하고 죽어 있으나 모든 사람에게 어느 정도 있다. 그러므로 적어도 덕의 그림자만은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딤후 3:5. 경건의 모양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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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지성과 함께 의지에는 억제하는 힘도 있다. 그 힘으로 대다수 사람에게서 죄가 극단으로 치닫는 것이 억제되어, 죄인들도 많은 중한 죄를 범하기를 꺼린다. 고전 5:1.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는 음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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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이 비참함을 외적으로 누그러뜨리는 것은 정치와 가정의 질서에 속하는 외적 수단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한 수단은 죄와 비참함이 퍼지는 일을 어느 정도 막는다.

각주

55
‘죄의 불쏘시개’라는 말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제3부 제27문 제3항에서 왔다. 아퀴나스는 이를 감각적 욕구에 자리 잡은 무질서한 욕망이라 설명한다. 욕망이 실제로 일어나면 죄의 움직임이 된다. 감각적 욕망은 이성에 반항하여 악으로 기울게 하거나 선을 막는다는 점에서 무질서하다. 따라서 악으로 기울게 하거나 선을 막는 것이 이 불쏘시개의 본질이다. ↩
56
죄를 거듭 지어 양심이 위험과 해로움,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났다고 그릇되게 느끼는 상태이다. ↩
57
원문은 피부가 검은 사람을 가리키는 옛 표현을 쓴다. 현대 영어 번역에서는 ‘에티오피아 사람’으로 옮기기도 한다. 문자적으로는 오늘날 수단과 에티오피아에 해당하는 지역인 구스 출신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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