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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정수 - 윌리엄 에임스(16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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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중보자 그리스도의 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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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타락에 이어 그 회복을 살핀다.
1. 사람의 회복이란 죄와 죽음의 상태에서 그를 일으켜 은혜와 생명의 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2. 이 회복의 원인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뜻이었다. 엡 1:9. 하나님이 자신 안에서 정하신 자유롭고 기쁘신 뜻을 따라. 사람 안에는 이 회복을 이루는 데 힘을 보탤 것이 하나도 없었다. 도리어 하나님을 향한 적대가 담긴 죄처럼 회복을 거스르는 것이 많았다. 바로 그 점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난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사랑을 나타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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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회복에는 구속과 그 적용이라는 두 부분이 있다. 구속은 회복의 첫 행위와 같고 적용은 둘째 행위와 같다. 구속은 우리 구원의 질료와 같고 적용은 형상과 같다. 구속은 충족성과 같고 적용은 그 사역적 권능의 실현이다.
4. 두 부분의 범위는 완전히 같다. 구속의 목적은 그 적용이며, 적용의 첫 근거와 규칙과 척도는 구속 자체의 원인이 된 하나님의 은혜로운 뜻이다. 엡 1:9–10. 하나님은 자신 안에서 미리 정하신 기쁘신 뜻을 따라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다. 이는 미리 정하신 때가 차 그 경륜을 이루실 때에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모으시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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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 구속이 얻어진 모든 사람에게 그 구속이 정해져 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요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모두 내게로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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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구속은 합당한 값을 치러 사람을 죄와 마귀의 속박에서 풀어 주는 것이다. 벧전 1:18. 너희는 은이나 금처럼 썩을 것으로 구속받은 것이 아니라 보배로운 피로 구속받은 줄 안다. 고전 6:20. 너희는 값으로 산 자들이다. 고전 7:23. 너희는 값으로 산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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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 자유는 우선적으로 권능이나 기도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들도 이 일을 완성하는 데 효력이 있었지만, 자유는 정당한 값을 치름으로써 얻어졌다.
8. 사람이 이 값을 치를 수 없었으므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서 그들을 완전히 화목하게 하실 중보자가 필요했다. 딤전 2:5. 행 20:28. 자기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 딤전 2:6.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신을 우리 구속의 값62으로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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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 중보자는 한 시대에만 주어지신 분이 아니라 어제와 오늘과 영원히 계신 분이다. 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 계 13:8. 세상의 기초가 놓일 때부터 죽임당하신 어린양. 그분은 때가 찼을 때 비로소 나타나셨다. 골 1:27. 딛 1:2. 벧전 1:20. 이 중보는 모든 시대에 똑같이 필요했으며, 하나님의 작정과 약속과 받아들이심의 효력으로 처음부터 충분하고 효력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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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행 4:12.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다. 하늘 아래 사람들 가운데 우리가 구원받아야 할 다른 이름이 주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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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리스도에 관해 두 가지를 살펴야 한다. 첫째는 구속의 일을 수행하기에 합당하신 점이고, 둘째는 구속 자체의 여러 부분이다.
12. 그분이 합당하신 점에는 두 부분이 있다. 첫째는 그분의 위격이고 둘째는 그 위격에 맡겨진 직분이다.
13. 중보자 그리스도의 위격에서는 두 본성의 구별과 그 두 본성의 위격적 연합을 살펴야 한다.
14. 구별되는 본성은 신성의 둘째 위격에 속하는 신적 본성과, 죄와 실존 방식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우리의 본성과 같은 인간 본성이다. 마 1:23.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요 1:14. 그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두 본성의 구별 자체는 남는다. 두 본성이 본질과 본질적 속성 모두에서 이전과 완전히 동일하게 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이 인성으로, 인성이 신성으로 변하지 않으며 서로 섞이거나 혼동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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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위격적 연합은 신성의 둘째 위격이 인간 본성을 취하셔서 그 본성이 동일한 위격 안에서 분리될 수 없이 실존하게 하신 일이다. 요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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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신성의 둘째 위격은 하나의 위격적 실존만을 지니시나 실존 방식은 둘이다. 하나는 영원부터 신적 본성 안에서 실존하시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성육신 이후 인간 본성 안에서 실존하시는 방식이다. 롬 9:5. 육신으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서 나셨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며 영원히 찬송받으실 하나님이시다. 아멘. 뒤의 실존 방식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 본성과 연합하셨다는 점에서 그분에게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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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이 연합은 신적 위격과 본성에 일정한 관계 외에는 아무것도 더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 본성에는 변화를 일으켜 그것을 가장 높은 완전함으로 높인다. 인간 본성은 그것을 취하신 신적 위격에 고유하게 속한 것과 같으며, 한 분이신 하나님이자 사람의 한 부분과 같고 신적 본성은 다른 부분과 같다. 실존에 관하여는 신적 본성이 특별히 붙드시는 결과와 같으며, 또한 신적 본성이 특별히 거하시는 자리와 같다. 골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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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우리는 이 연합을 여러 논리적 방식으로 묘사하고자 한다. 어느 한 방식만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 이 연합이 지극히 긴밀함을 보이기 위하여 일치와 하나 됨의 근거를 담은 모든 용어를 사용한다.
20. 다만 이 말들에는 ‘마치’라는 한정을 붙인다. 이 연합은 신비롭고 감추어져 있어 사람의 말과 개념으로 명백히 표현할 수 없고 그 모습만 비출 수 있기 때문이다.
21. 이 연합에서 위격 안의 속성 교통이 따른다. 이는 한 본성의 속성이 다른 본성으로 실제로 옮겨 들어가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신적 본성이 인간 본성의 속성을 취하고 인간 본성이 신적 본성의 속성을 취하여, 인성이 신성이 되고 신성이 인성이 되거나 두 본성 모두 존재하기를 그칠 것이다. 또한 인간 본성이 신적 속성을 자기 도구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실제 양여도 아니다. 이는 동일한 사역에 함께 참여하는 교통이다. 두 본성이 함께 사역하되 각각 구별되는 자기 속성에 따라 행한다.
22.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모든 행위와 고난은 그것들이 귀속되는 고유한 자리인 그분의 위격에 돌려진다. 다만 그 근원과 고유한 성격을 두고 보면 어떤 것은 한 본성에, 다른 것은 다른 본성에 돌리는 것이 옳다.
23. 이로부터 서술63 또는 귀속에서의 속성 교통이 따른다. 한 본성의 속성을 위격 전체에 돌리기도 한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고 할 때는 인간 본성에 고유한 것을, 태초에 계셨다고 할 때는 신적 본성에 고유한 것을 돌린다. 또한 같은 위격이시므로 한 본성의 속성을 다른 본성의 명칭으로 가리킨 분에게 돌리기도 한다. 하나님이 영광 가운데 올려지셨다거나(딤전 2:16 [원본, 개정본 표기])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할 때가 그러하다. 고전 2:8. 이 일들은 신적 본성보다 인간 본성에 고유하다. 위격 전체에 고유한 일은 어느 한 본성의 명칭으로도 그분에게 돌릴 수 있다. 사람이신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라 부를 때가 그러하다. 딤전 2:5. 중보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이시라는 점만으로 해당하지 않고 하나님이자 사람이시라는 점에서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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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이 교통은 본성 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위격에 고유하게 관계한다. 마찬가지로 서술에서의 교통은 추상적인 신성이나 인성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분에 관계한다.
25. 그러므로 속성 교통은 단순히 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 본성의 속성이 다른 본성에 넘어가 그 본성이 그 속성을 내적으로 소유하거나 자기 것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26. 이와 달리 생각하는 이들이 질료와 형상, 영혼과 몸, 쇠와 불의 교통을 예로 들지만, 그 예들은 이 신비에 맞지 않으며 그들의 주장 자체를 입증하지도 못한다.
27. 그리스도께는 두 지성이 있었다. 신적 지성으로는 모든 것을 아셨고(요 21:17), 인간의 지성으로는 아직 알지 못하시는 것이 있었다. 막 13:32. 또한 신적 의지와(눅 5:13) 인간의 의지가 있었으며, 본성적 욕구도 있었다. 마 26:39.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임재에도 두 방식이 있다. 그러나 인간 본성으로는 어디에나 계실 수도 없고 동시에 여러 곳에 계실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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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자 사람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생명을 회복하셨으므로,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를 향하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향한다.

각주

62
‘몸값’이라고도 할 수 있다. ↩
63
자명하거나 논증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것을 진술하는 일이다. ↩
◀ 제17장 죄의 전파19 / 64제19장 그리스도의 직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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