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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정수 - 윌리엄 에임스(16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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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장 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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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흘러나오는 복을 함께 누린다는 것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과 함께 바르고 복되게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나누어 받는다는 뜻이다. 엡 1:3. 하나님께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셨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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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러므로 이 교통으로 믿는 자들의 처지가 바뀐다. 그들은 죄와 죽음의 상태에서 의와 영원한 생명의 상태로 옮겨진다. 요일 3:14. 우리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음을 안다.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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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상태의 변화에는 관계적 변화와 절대적, 곧 실질적 변화가 있다.
4. 관계적 변화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여기시는가에 있다. 롬 4:5. 일하지 않더라도 경건하지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시는 분을 믿는 사람은 그 믿음이 의로 여겨진다. 고전 5:19〔원문 표기. 인용은 고후 5:19〕.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신과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범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으셨다.
로마서 4:5, 고린도전서 5:19, 고린도후서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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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따라서 이 변화 자체에는 엄밀한 의미의 정도 차이가 없다. 단 한 번의 행위로 일시에 완결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변화가 드러나는 방식과 이를 느끼는 정도와 그 효과에는 차이가 있다. 여기에 칭의와 양자 됨이 속한다.
6. 칭의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판결이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붙드는 그리스도 때문에 믿는 자를 죄와 죽음에서 풀어 주시고, 그를 의롭다고 여기셔서 생명을 얻게 하신다. 롬 3:22, 24.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가 믿는 모든 사람 안에, 또 그들 위에 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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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칭의라는 말의 쓰임을 보면 그것은 판결을 선고하는 일이다. 성경에서 이 말은 사람의 본성이나 실질이 바뀌는 일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판결을 선고하고 그 사람을 의롭다고 여기는 사법적 또는 도덕적 변화를 가리킨다. 잠 17:15. 악인을 의롭다 하는 자. 롬 8:33. 누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겠는가?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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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러므로 토마스와 그 추종자들은 크게 잘못되었다. 그들은 칭의를 불의의 상태에서 의의 상태로 실질적으로 변화하는, 일종의 자연적 운동으로 본다. 그들에게 이 운동의 출발점은 죄이고 도달점은 내재하는 의이며, 그 과정은 일부는 죄 사함으로, 일부는 의의 주입으로 이루어진다.
9. 이 판결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첫째. 의롭다 하시려는 작정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먼저 세워졌다고 할 수 있다. 갈 3:8.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실 것을 미리 보았다. 둘째.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실 때 그분 안에서 선고되었다. 고후 5:19.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신과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으셨다. 셋째. 믿음이 생길 때 처음 맺어지는 관계 안에서 그 판결이 이미 효력을 발휘한다. 롬 8:1.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넷째. 하나님의 영이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음을 우리 영에 증언하심으로써 그 판결이 명시적으로 선고된다. 롬 5:5.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다. 이 성령의 증언은 칭의 자체라기보다, 믿음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되돌아보는 행위를 통해 이미 받은 칭의를 실제로 깨닫는 일이다.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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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 판결은 은혜롭다. 엄밀히 말해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은혜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롬 3:24. 그분의 은혜로 값없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중보자의 직분에 부르시고 택하신 자들을 이끌어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신 바로 그 은혜로, 이미 이끌려 믿게 된 사람들을 그 연합에 근거하여 의롭다고 여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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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 판결은 그리스도 때문에 주어진다. 고후 5:21.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다. 아담의 불순종이 하나님의 공의가 우리를 정죄하신 근거인 범죄였듯이, 그리스도의 순종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근거인 의이다. 롬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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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그러므로 칭의에서 그리스도의 의가 믿는 자들에게 전가된다. 빌 3:9. 내가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곧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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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하나님께서 이 목적을 위해 이 의를 정하시고 그 은혜로 인정하고 확증하셨으므로 죄인들이 이 의를 통해 그분 앞에 설 수 있다. 그러므로 이를 하나님의 의라고 한다. 롬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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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칭의가 그리스도 때문에 주어진다는 말은 그리스도 자신만을 따로 고려한다는90 뜻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부르심91의 원인이기도 하다. 칭의는 믿음으로 붙드는 그리스도 때문에 주어진다. 믿음은 부르심의 결과로 뒤따르고, 또한 의가 먼저 있어야 믿음으로 그 의를 붙든다. 그렇게 의를 붙들면 칭의가 뒤따른다. 그러므로 성경은 의가 믿음에서 난다고 하고(롬 9:30, 10:16), 칭의가 믿음을 통해92 이루어진다고 한다(롬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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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이 의롭다 함을 받는 믿음93은 성경에 계시된 진리에 지성으로 동의하는 일반적인 믿음과 다르다. 그러한 믿음은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에게 고유하지 않고, 그 자체로 의롭다 함을 받게 하는 효력이 없으며, 성경이 곳곳에서 칭의의 믿음에 돌리는 결과도 낳지 못한다.
16. 엄밀히 말하면 이 믿음은 우리가 죄 사함과 칭의 자체를 깨닫는 특별한 확신과도 다르다. 의롭다 함을 받는 믿음은 원인이 결과에 앞서듯 칭의 자체에 앞선다. 반면 칭의를 깨닫는 믿음은 반드시 이미 이루어진 칭의를 전제하며, 행위가 그 대상에 뒤따르듯 칭의에 뒤따른다.
17. 그러므로 죄 사함과 구원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믿음을 엄밀히 의롭다 함을 받는 믿음이라 한다. 의롭다 함을 받는 믿음에 온전히 부합하는 대상은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믿음은 우리를 의롭게 하는 의를 붙듦으로써 우리로 의롭다 함을 받게 한다. 이 의는 우리가 동의하는 어떤 명제의 진실성에 있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다. 고후 5:21. 그분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의가 되도록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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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그래서 신약에서 거듭 전하는 말씀은 칭의를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요 1:12, 3:15–16, 6:40, 47, 14:1, 54 [개정본에는 요 14:1, 6 표기], 롬 4:5, 3:26, 행 10:43, 26:18, 갈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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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이 믿음은 그 본성상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대한 특별하고 확실한 확신을 낳으며, 그러한 확신이 믿음에 따른다. 그러므로 정통 교사들이 이 확신으로 칭의의 믿음을 설명하는 것은 흔히 적절하다. 특히 로마 가톨릭 교도들이 모든 것을 돌리는 일반적 믿음에 맞서 말할 때 그러하다. 다만 첫째. 이 확신을 언제나 느끼는 것은 아니다. 판단의 연약함이나 여러 시험과 마음의 고통 때문에, 실제로 믿고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도 한동안 자신의 느낌에 따라 자신에게 믿음이 없고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흔히 그렇게 된다. 둘째. 이 확신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믿는 자들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호의에 대해 같은 확신을 갖는 것도 아니고, 같은 사람이라도 언제나 같은 확신을 갖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에게 남기신 위로와 평안을 크게 해치지 않고서는, 칭의의 믿음 자체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말할 수 없다.
20. 칭의는 죄와 죽음에서 풀어 준다. 이는 죄의 허물이나 오염이나 모든 결과를 즉시 없애는 일이 아니라, 영원한 죽음을 당해야 할 형벌의 의무와 죄책을 없애는 일이다. 롬 8:1, 33–34. 정죄함이 없다. 누가 그들을 고발하겠는가? 누가 정죄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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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또한 죄책을 없앤다는 것은 죄가 형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사실 자체를 없앤다는 뜻이 아니다. 죄 자체가 남아 있는 한 그 사실은 결코 없어질 수 없다. 칭의는 죄에 마땅히 따를 보응의 집행, 곧 그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결과를 없애는 방식으로 죄책을 없앤다.
22. 성경은 죄에서 풀어 주는 이 일을 서로 다른 면에서 보아 죄 사함, 구속, 화목이라 부르지만, 모두 같은 일을 가리킨다. 엡 1:6–7. 죄책의 면에서 죄의 상태를 속박이나 영적 포로 상태로 보면 칭의는 구속이다. 같은 상태를 마땅한 형벌을 받아야 하는 상태로 보면 칭의는 죄 사함이다. 이를 허물을 지나치고, 지우고, 짐을 벗기고, 없애고, 내던지고, 옮기고, 등 뒤에 던지는 일이라고도 한다. 롬 4:7, 골 2:13, 미 7:18, 사 43:12, 38:17, 시 32:1–2. 또 같은 상태를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로 보면 칭의는 화목이다. 롬 5:10. 이를 죄를 눈감아 주시는 일(민 23:25 [개정본에는 레 20:4 표기])이나 죄를 덮으시는 일(시 32:1–2)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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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의 지난 죄뿐 아니라 앞으로 지을 죄도 어떤 의미에서는 용서된다. 민 23:25〔원문 표기. 인용은 23:21〕. 하나님께서 야곱의 불의를 보지 않으시고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않으신다. 칭의는 정죄의 여지를 남겨 두지 않기 때문이다. 요 5:24.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며 정죄에 이르지 않는다. 칭의는 그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확실하고 즉각적으로 선고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얻으신 죄 사함을 모두 실제로 우리의 것이 되게 한다. 앞으로 지을 죄도 어떤 의미에서 용서되지 않는다면 과거와 현재의 죄도 완전히 용서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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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다만 차이가 있다. 지난 죄는 죄 사함이 직접 적용되어 용서되지만, 앞으로 지을 죄에는 그 효력으로만 용서가 미친다. 지난 죄는 그 죄 자체가 용서되고, 앞으로 지을 죄는 죄를 짓는 주체인 그 사람에게서 용서된다.
25. 그러나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도 날마다 죄 사함을 구한다. 첫째. 이 은혜가 계속 필요하기 때문이다. 둘째. 각각의 죄에 따라 그 은혜를 더 깊이 느끼고 더 분명히 깨닫기 위해서이다. 셋째. 칭의에서 선고된 판결의 집행이 진전되어 완결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26. 죄 사함과 함께 의의 전가도 필요하다. 롬 5:18, 계 19:8, 롬 8:3. 죄가 전혀 없는 경우에도 칭의에 필요한 의가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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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이 의를 그리스도의 본성과 출생과 삶의 순결함에서 각각 따로 구할 수는 없다. 그 의는 그리스도의 모든 순종에서 나오며 죄 사함과 함께 주어진다. 아담의 동일한 불순종이 우리에게서 본래의 의를 빼앗았고 우리를 정죄받을 죄책 아래 놓이게 한 것과 같다.

각주

88
제네바 성경. ↩
89
아래 제15–17항에 더 자세한 설명이 있다. ↩
90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의롭다 하심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받으셨다는 뜻이다. 그분의 의는 율법 아래서 완전하고 공로가 있었다. 그분은 본래 의로우셨으므로 그분을 의롭다고 선언하거나 여기는 판결로 의롭게 되신 것이 아니다. ↩
91
여기서 vocation은 우리의 부르심, 곧 음성으로 부르거나 소환한다는 뜻이다. ↩
92
또는 ‘믿음으로’. ↩
93
또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 ↩
94
의는 단순히 죄가 없는 상태가 아니다. 율법에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금하는 조항과 행해야 할 일을 명하는 조항이 모두 있다. 따라서 율법이 요구하는 의 없이 죄 사함만으로는 구원받기에 충분하지 않다. 우리 자신이 완전히 의롭지 않다면 그리스도의 의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야 한다. 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지옥에서 건져 내실 뿐 아니라 하늘에 이르게 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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