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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정수 - 윌리엄 에임스(16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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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장 신비적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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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구속의 적용 자체를 살폈다. 이제 그 적용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살핀다.
1. 구속의 적용을 받는 대상은 교회이다. 엡 5:25–27.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주셨다. 말씀을 통하여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셔서, 티나 주름이나 그와 같은 것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 곧 거룩하고 흠 없는 교회로 자기 앞에 세우려 하심이다. 그러므로 선택과 구속과 부르심과 칭의와 양자 됨과 성화와 영화는 모두 동일한 대상, 곧 교회를 이루는 바로 그 사람들에게 속한다. 요 17:9–11. 내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한다. 세상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니,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다. 롬 8:29–30.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미리 정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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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교회는 이 적용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그 결과이다. 먼저 교회가 실제로 존재하고 나서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교통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교회가 된다.
3.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적용에 관한 일을 먼저 설명하고 이해하지 않고서는 교회의 본질도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
4. 택함받은 자들은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기 전에는 가능성으로만 교회에 속한다. 다만 하나님의 뜻과 그리스도와 맺으신 약정으로 말미암아 그 가능성은 때가 되면 반드시 실현된다.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있는 그 먼 가능성이 택함받은 자들에게는 하나님 안에서 확실히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5. 그러므로 교회를 택함받은 자들의 모임으로 정의하는 정통 신학자들은 ‘택함받은 자들’이라는 말로 선택에 따라 부름받은 자들을 뜻하거나, 지금 실제로 존재하는 교회뿐 아니라 장차 이루어질 교회까지 포함하여 정의한다.109
6. 교회를 실제로 이루는 첫째 일은 부르심이다. 교회는 여기에서 그 이름과 정의를 얻는다.
7. 교회는 부름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고전 1:24, 10:3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부르심을 받은 자들.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부르심의 목적은 믿음이며, 믿음은 사람을 그리스도께 접붙이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분과의 교통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같은 뜻으로 교회를 믿는 자들의 모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의 모임, 그리스도와 교통하는 자들의 모임이라고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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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믿음이 그리스도를 향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향하듯, 믿음으로 존재하는 이 교회도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으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속한다. 그러므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골 1:24)과 하나님의 교회(고전 10:32), 그리스도의 나라(골 1:13)와 하나님의 나라(롬 14:17)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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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교회라 함은 부름받은 한 개인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교제 가운데 결합한 공동체를 뜻하므로 이를 모임이라 부른다. 따라서 교회는 여러 지체가 서로 맞물려 단단히 결합한 몸110이라 불린다. 엡 4:16. 같은 이유로 성경은 교회를 집, 가족, 성읍, 나라, 양 떼 등으로 흔히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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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 모임의 구성원은 사람으로 한정된다. 선한 천사들도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분께서 주시는 교제의 은혜를 누리므로 어떤 면에서는 교회에 속한다. 그러나 구속받은 교회의 지체들과 같은 부류에 속하지는 않는다.
11. 이 교회를 이루는 형식, 곧 구성 원리는 부름받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있어야 한다. 그것은 관계일 수밖에 없으며, 그리스도를 으뜸으로 여기고 그분을 가까이 따르는 마음에 근거한 관계만이 교회를 이루는 힘을 갖는다. 사람 안에서 그런 관계를 맺게 하는 것은 믿음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교회의 형식이다.
12. 믿음을 믿는 자 각자에게 있는 것으로 보면 부름받은 각 사람을 이루는 형식이다. 그 믿음을 모든 믿는 자에게 함께 있는 것으로 보면 부름받은 자들의 모임, 곧 교회를 이루는 형식이다.
13. 같은 믿는 자들을 한 사람씩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고, 함께 모인 무리로 보면 하나님의 교회이다.
14. 그러므로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약속 가운데 본질적인 복을 담은 약속들은 믿는 자 각자에게도 속한다.
15. 이 관계는 매우 긴밀하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것이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것일 뿐 아니라(아 2:26〔원문 표기. 해당 구절은 2:16〕),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 계시고 교회가 그분 안에 있다(요 15:4, 요일 3:24). 그러므로 신비한 의미에서 교회를 그리스도라 하고(고전 12:12), 그리스도의 충만이라 한다(엡 23〔원문 표기. 해당 구절은 엡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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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그러므로 비유로 교회를 신부라 하고 그리스도를 신랑이라 한다. 교회는 성읍이고 그리스도는 왕이시며, 교회는 집이고 그리스도는 집주인이시다. 교회는 가지들이고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이시며, 교회는 몸이고 그리스도는 머리이시다.
17. 이 비유들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연합과 교통을 나타내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모든 존귀함과 생명과 능력과 완전함의 근원이 되시는 질서를 나타낸다.
18. 신비적 교회는 하나이다. 그것은 여럿을 아우르는 일반적 범주가 하나라는 뜻이 아니라, 더는 하위 종으로 나뉘지 않는 최하위 종 또는 하나의 개체와 같다는 뜻이다.111
19. 그러므로 교회를 보편적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보편적’은 유나 일반 개념을 뜻하지 않고, ‘온 세상’이라고 할 때처럼 모든 부분을 아우르는 전체112를 뜻한다. 교회는 모든 민족과 모든 장소와 모든 시대의 믿는 자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20. 그러므로 교회의 어떤 부분도 보편 교회의 믿음을 고백하는 한에서만 참으로 보편적이라 불릴 수 있다. 고대 교회도 이런 의미에서 로마에 있던 교회뿐 아니라 다른 교회들도 보편적이라고 불렀다. 우리 프라네커 교회도 보편 교회의 믿음을 고백한다는 점에서 마땅히 보편적이라 불릴 수 있다.
21. 교회는 그리스도와 누리는 교통의 정도에 따라 나뉜다. 이런 점에서 교회를 싸우는 교회와 승리한 교회로 부른다.
22. 싸우는 교회는 이제 시작된 교통에 참여하며, 아직 이 세상의 전장에서 원수들과 싸운다. 고전 13:9, 12.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한다. 지금은 거울을 통해 희미하게 보기 때문이다. 고후 10:3〔원문 표기. 인용은 10:4〕. 우리가 싸울 때 쓰는 무기. 엡 6:12–13. 우리가 싸우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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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승리한 교회는 이미 완전하게 된 교회이다. 엡 4:13. 우리가 모두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충만한 장성의 분량에 이르기까지. 고전 15장〔원문 표기. 인용은 고전 13:10〕. 그 뒤에 온전한 것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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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싸우는 교회에는 보이지 않는 면과 보이는 면이 있다. 여기서 보인다는 것은 눈이나 다른 감각으로 알아볼 수 있다는 뜻이다.
25. 이 구별은 하나의 유를 여러 종으로 나누는 것113과 다르다. 보이는 교회 하나와 보이지 않는 교회 하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전체를 지체들로 나누어 교회의 한 부분은 보이고 다른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는 뜻도 아니다. 이는 같은 교회의 두 속성을 구별하는 것이다. 교회의 본질적이고 내적인 형식에 비추면 교회는 보이지 않으며, 본질에 속하지 않는 외적 형식에 비추면 교회는 보인다.
26. 본질적 형식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감각으로 알아볼 수 없는 관계이고, 또 영적인 관계이므로 다른 많은 관계보다 더욱 감각으로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7. 본질에 속하지 않는 외적 형식은 보인다. 그것은 내적 믿음의 외적 고백이며 감각으로 쉽게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28. 이 가시적 고백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또 서로 간에 나누는 눈에 보이는 교통이다.
29. 그리스도와 교통하는 행위는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의 복을 받고 그 복에 대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가시적 행위들이다.
30. 서로 교통하는 행위는 서로에게 선을 행하고자 힘쓰는 모든 행위이다.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나누는 교통을 직접 북돋우는 행위가 여기에 속한다.
31. 이 둘째 종류의 행위 가운데 많은 것은 아직 교회의 지체가 아닌 사람에게도 행해야 한다. 그들도 가능성의 면에서는 교회에 속한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32. 교회는 그 자체로 보이더라도 다른 이들의 눈에 얼마나 드러나는지를 비교하면 숨은 교회와 드러난 교회로 구별된다.
33. 드러난 교회는 그 수가 더 많고 신앙 고백이 더 자유롭고 공개적인 경우이다.
34. 숨은 교회는 그 수가 더 적고 신앙 고백이 덜 드러나는 경우이다. 이단이나 박해가 널리 퍼지거나 불경건한 행실이 만연할 때 흔히 이렇게 된다.
35. 같은 관점에서 신앙 고백이 얼마나 온전한가에 따라 교회는 더 순결하기도 하고 덜 순결하기도 하다.
36. 이 고백은 신앙을 말로 고백하고 말씀을 선포하는 일에만 달려 있지 않다. 말씀을 받아들이고 경건하게 순종하는 일에도 달려 있다.
37. 교회는 이런 변화를 겪고 세상의 어느 지역에서든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교회가 처음 모인 때부터 세상의 끝까지, 교회 전체가 사라진 적도 없고 사라질 일도 없다.
38. 그리스도께서는 원수들을 자기 발판으로 삼으실 때까지 언제나 원수들 가운데 자기 나라를 두셔야 하기 때문이다.
39. 교회는 가시성을 완전히 잃는 법도 없다. 예배의 모든 면에서 교통하고자 찾아갈 만큼 순결한 교회가 어디에도 거의 보이지 않는 때가 있다. 그래도 예배와 신앙 고백이 순결하지 못한 바로 그 상태에서도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든 눈에 보이게 남는다.

각주

109
이로부터 지상에서 싸우는 택함받은 자들의 교회, 하늘에서 승리한 택함받은 자들의 교회, 모든 시대 또는 온 세계에서 택함받은 자들의 보편 교회, 외적으로 믿음을 고백하는 가시적 교회, 내적으로 믿음을 행사하는 비가시적 교회를 구별한다. 아래 제21–26항을 보라. ↩
110
언약으로 결속된 공동체라는 뜻과, 지역 교회처럼 따로 식별되는 믿는 자들의 모임이라는 뜻을 함께 담고 있다. ↩
111
더 세분되지 않는 종 또는 종의 단일 개체를 가리킨다. 한 부류에 속하는 여러 사례 가운데 하나라기보다 유일하다는 뜻이다. ↩
112
온전히, 전체로서. ↩
113
유는 여러 종류에 공통된 본성을 나타내는 논리학 용어이다. 종은 여러 개별자에게 공통되는 본성을 나타내는 논리학 용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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