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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정수 - 윌리엄 에임스(16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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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장 세례와 성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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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약의 본질에 이어 그 성례를 다룬다. 신약의 성례는 수가 적고, 받거나 지키기 쉬우며, 뜻이 매우 분명하다.
2.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 성례들을 거룩하게 구별하고 제정하셨다. 그중 하나를 세례 요한이 먼저 시행했으나, 그 일에서도 그는 그리스도의 앞길을 준비하며 그리스도께서 나중에 친히 인정하고 제정하실 것을 보여 주었다. 그것이 통상적인 제도가 된 것은 요한의 사역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심으로써였다.
3. 이 성례들은 세례와 주의 만찬이다. 그리스도나 사도들은 다른 성례나 성례적 표징을 교회에 주지 않았으며, 사람도 교회에서 다른 것을 정할 수 없다.
4. 하나님께서 이 성례들을 제정하셨으므로 믿는 자들은 이를 부지런히 경건하게 시행할 엄중한 의무가 있다. 다만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므로, 성례가 없거나 단지 받지 못했다고 해서 그 제정의 은택까지 잃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를 이유로 정당한 직분자가 아닌 자가 성례를 시행하거나 교회 집회 밖에서 거행해서는 안 된다.147
5. 세례는 처음 들어감, 곧 중생의 성례이다.
6. 세례는 믿는 자에게 은혜 언약 전체를 인치지만, 특별히 우리가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는 일 자체를 나타내고 확증한다. 롬 6:3.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세례를 받았다. 제5절. 그분과 함께 심겼다.148 고전 12:13. 우리는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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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처음 접붙임을 받는 즉시 칭의와 양자 됨의 관계가 뒤따른다. 그러므로 접붙임 자체의 성례인 세례는 죄 사함을 위한 것이다. 막 1:3〔원문 표기. 해당 구절은 1:4〕. 세례는 양자 됨도 나타낸다. 세례로 우리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바쳐지고 세례받는 자에게 그 이름이 불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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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우리가 접붙임을 받은 그리스도에게서 모든 믿는 자에게 거룩함이 늘 흘러나오므로, 세례는 우리 성화의 인이기도 하다. 딛 3:5. 그분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롬 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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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영화는 참된 거룩함과 분리될 수 없으므로 세례는 영원한 영광의 인이기도 하다. 딛 3:7. 영생의 소망을 따라 우리가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다. 롬 6:8.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면 그분과 함께 살 것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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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세례에서는 처음 들어가는 일에 합당한 방식으로 이 은택들이 인쳐진다. 그러므로 첫째. 세례는 한 번만 시행해야 한다. 출생으로 시작되는 자연적 생명이 한 번 시작되듯, 중생으로 시작되는 영적 생명도 한 번 시작되기 때문이다.
11. 그러므로 둘째. 은혜 언약에 속하는 모든 사람에게 세례를 시행해야 한다. 세례는 그들에게 이제 시작된 언약 자체를 처음 인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12. 믿는 자들의 어린 자녀에게 이 성례를 금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이 어떤 은혜에든 참여한다면 은혜 언약으로 말미암은 것이므로 언약과 언약의 첫 인이 모두 그들에게 속한다. 둘째. 지금 믿는 자들이 속한 언약은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과 같다. 롬 4:11, 갈 3:7–9. 그 언약은 어린 자녀에게도 명시적으로 미쳤다. 셋째. 지금 믿는 자들에게 시행되는 언약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보다 더 크고 충만한 위로를 준다. 그런데 언약이 그들 자신에게만 속하고 어린 자녀에게는 속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뒤에 하나님의 은혜와 그들이 받는 위로가 오히려 이전보다 줄어들 것이다. 넷째. 세례가 할례의 자리를 이었다. 골 2:11–12. 그러므로 할례와 마찬가지로 세례도 믿는 자들의 자녀에게 해당한다. 다섯째. 세례가 인치는 중생의 시작에서 사람은 전적으로 수동적이다. 그러므로 다른 성례와 달리 할례나 세례를 받을 때는 사람이 어떤 외적 행위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받기만 하면 된다. 따라서 이 성례의 주된 쓰임에 비추어 어린아이도 장성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세례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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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아브라함은 믿는 자들의 아버지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믿음과 회개가 하나님의 언약을 성립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에게 믿고 회개하는 행위가 없다는 것이 그때 할례를 막지 않았듯, 지금도 세례를 막아서는 안 된다.
14. 이 성례의 표징은 물이다. 단지 물 자체가 아니라, 담그거나 뿌려 더러운 것을 씻는 물이다.
15. 물을 택하신 것은 그리스도의 피, 곧 죽음으로 이루어지는 영적 씻음을 일상에서 쓰는 어떤 것도 물보다 잘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피를 뿌리거나 적용하는 일도 물만큼 알맞게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뒤로 거룩한 일에 실제 피를 사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16. 성찬, 곧 주의 만찬은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양육받고 자라는 성례이다.
17. 그러므로 같은 사람에게 여러 번 시행해야 한다.
18. 그러므로 주의 만찬은 교회 안에서 양육받고 자랄 수 있음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자들에게만 시행해야 한다. 따라서 어린아이에게는 시행하지 않으며 충분히 자란 사람에게만 시행한다.
19.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충만하고 온전한 양육이 인쳐지므로, 여기서는 양육의 표징 하나만 쓰지 않는다. 몸을 기르는 데 두 가지가 필요하듯, 떡과 포도주라는 두 가지 표징을 쓴다.
20. 그러므로 만찬을 시행하면서 믿는 자들에게 이 두 표징 가운데 하나를 주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깎아내리고,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제도를 온전하지 못하게 하며, 믿는 자들의 위로를 크게 줄이거나 빼앗는다.
21. 떡과 포도주를 쓰는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점차 누리는 가장 긴밀한 연합을 이보다 알맞게 나타낼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 연합은 그리스도께서 몸을 제물로 드리고 피를 흘리신 데 근거한다.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일이 그 연합을 나타낼 수는 있으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가 끝났으므로 살을 먹는 일은 거룩한 의식에 들어설 자리가 없으며, 피를 마시는 일은 신앙뿐 아니라 사람의 본성도 꺼린다.
22. 세례에서는 상정하지 않는 화체나 공재149를 이 성례에서 상정하는 것은 눈멀고 어리석은 미신이다.
23. 이 성례에서 영적으로 양육받기 위해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거나 그리스도께서 그것들과 함께 몸으로 임재하실 필요는 없다. 떡과 포도주는 적용과 쓰임에서 그 관계가 바뀌면 되며,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으로 받는 이들에게 영적으로 임재하시면 된다.
24. 이러한 화체와 공재는 성례 일반의 본질과 다른 성례인 세례와의 유비에 어긋난다. 또한 구약의 가장 일반적인 표현과 그리스도의 인성과 그분이 영화롭게 되신 상태에도 어긋나며, 심판 날까지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계시리라는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도 어긋난다.
25. 제정의 말씀인 ‘이것은 내 몸이다’는 성경 곳곳에 나오는 다른 성례적 표현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런 표현을 분명하게 풀이해 주신다. 창 17:10–11. 이것이 언약이다. 그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맺은 언약의 표징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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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이 표현을 언어의 규칙에 따라 어떻게 풀이할지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다르다. 우리 해석자 대부분은 이 말에 비유적 용법150, 곧 은유나 환유151가 있다고 본다.
27. 루터파는 여기서 비유적 용법을 찾을 수 없으며, 다만 이례적인 서술152이 있다고 주장한다.
28. 또한 적지 않은 근래의 해석자들은 엄밀한 의미의 비유적 용법도 이례적인 서술도 없다고 한다. 그들은 이를 본래 뜻에서 벗어난 신비적 서술로 본다.
29. 그러나 이 말에 비유적 용법이 없다고 볼 충분한 이유는 제시되지 않았다. 이를 다음과 같이 증명할 수 있다. 그들의 말대로 본래 뜻에서 벗어나거나 이례적인 서술이라면, 어떤 낱말에서 그런 서술 방식이 드러나는지 보여야 한다. 그렇다면 그 낱말은 어떤 방식으로든 본래의 뜻과 쓰임에서 옮겨 쓰인 것이다. 그 경우 그 낱말은 비유적 용법의 성격과 정의에 들어맞는다.
30. 그러나 비유적 용법은 앞에 나오는 관사에도, ‘이다’와 같은 연결 동사153에도 있지 않다. 그것은 뒤에 나오는 ‘몸’이라는 말에 있다. ‘몸’이 몸의 표징을 가리키는 데 쓰인 것이다. 그렇다고 그 문장에서 참된 몸 자체가 빠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표징이 그것이 가리키는 것과 맺는 관계로 말미암아 그 몸이 포함된다.
31. 이 낱말에는 세 가지 비유적 용법이 있다. 첫째. 어떤 것을 그와 닮은 것으로 대신 나타내는 은유이며, 여기에 부수물의 환유가 결합되어 있다. 떡은 그리스도의 몸과 닮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정하심으로 그 몸에 결부된 표징이 되었다. 둘째. 부분으로 전체를 나타내는 제유이다. 그리스도의 몸이 그리스도 전체를 가리킨다. 셋째. 주체로 그에 딸린 것을 나타내는 환유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서 우리에게 오는 모든 은택까지 가리키기 때문이다. 다른 부분인 포도주에 대해서도 다른 비유적 용법이 충분히 드러난다.

각주

147
앞 장의 회중주의 견해에 비추어, 여기서 에임스가 말하는 직분자는 국가가 승인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따라 임직된 자이다. 그는 바른 교리와 실천을 위해 성례를 건전한 가르침과 함께 시행해야 하므로 이 요건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1659) 168쪽에서 통상적으로 성례가 말씀과 함께할 때 믿음이 가장 굳게 확증되고 강해진다고 썼다. 또한 성례를 개인의 일이 아니라 회중의 일로 보므로 집회 밖의 시행을 경계한다. ↩
148
곧 장사되었다는 뜻이다. ↩
149
루터파와 고교회파 성공회에서 성찬을 성별한 뒤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실체가 성별된 떡과 포도주의 실체와 함께 존재한다고 설명하는 교리이다. ↩
150
말을 비유적으로, 곧 문자 그대로의 뜻에서 벗어나 사용하는 것이다. ↩
151
어떤 것 자체의 이름 대신 그 속성이나 특징의 이름을 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 수를 센다는 뜻으로 ‘머릿수를 세었다’고 말하는 경우이다. ↩
152
논리학에서 자명하다고 여겨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서술을 뜻한다. ↩
153
문장의 주어와 보어를 이어 주는 동사이다. ‘그는 의사가 되었다’에서 ‘되었다’가 이에 해당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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