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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정수 - 윌리엄 에임스(16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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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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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덕을 실천하는 행위는 덕 있는 성향에서 나오는 작용이다. 마 12:3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아 둔 선한 것에서 선한 것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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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같은 뜻에서 이 행위를 선하고 바르며 칭찬할 만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위, 곧 선행이라 부른다.
3. 선행에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선한 작용 원인, 곧 선한 성향을 지니고 참된 덕에서 움직이는 의지이다. 좋은 열매는 좋은 나무에서만 맺힌다. 마 12:33. 둘째. 선한 소재 또는 대상, 곧 하나님께서 권하시는 일이다. 마 15:9. 그들이 사람의 명령을 교리로 가르치며 헛되이 나를 예배한다. 셋째. 선한 목적, 곧 하나님의 영광과 그 영광에 이바지하는 것들이다. 고전 10:31.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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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선한 행위든 악한 행위든 목적과 대상이 같은 경우가 흔하다. 특히 의지가 무엇을 의도하고 선택할 때에는 목적 자체가 고유한 대상이다. 바라고 원하고 소망하고 사랑하고 누리는 행위는 목적 자체를 소재나 대상으로 삼는다. 또는 목적에 이바지하는 것을 바로 그러한 방편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그 행위의 선함이나 그릇됨은 목적에서 비롯된다.
5. 선을 행하려는 막연하고 일반적인 의도는 다른 조건이 빠져 있으면 구체적인 행위를 선하게 하지 못한다. 구체적으로 선을 이루려는 의도라도 방편이 악하면 충분하지 않다. 가난한 사람을 돕거나 경건한 일에 쓰려는 목적으로 남의 재물을 가져가는 경우가 그러하다. 그러나 악한 의도는 언제나 행위를 악하게 하며, 선한 의도는 다른 조건과 함께 선행을 이루는 데 크게 이바지한다.
6. 참으로 선한 행위가 되려면, 적어도 그 행위에 작용하는 의도에서는 하나님을 으뜸가는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7. 넷째. 선한 형식, 곧 바른 방식이 필요하다. 이는 행위가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데 있다.
8. 하나님의 뜻은 이성이 그 뜻을 깨닫는 만큼 사람의 행위에 형식을 부여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양심 자체가 도덕적 행위의 하위 규범이다. 모든 행위는 바른 양심에 맞아야 하며, 양심이 잘못 판단하거나 판단을 유보할 때에는 그 판단을 먼저 바로잡은 뒤에야 그것과 달리 행할 수 있다. 다만 가벼운 거리낌이나 망설임 때문에 달리 합당하다고 인정된 행위를 미루어서는 안 된다.
9. 이 형식 또는 방식이 선하려면 모든 정황이 선해야 한다. 개별 행위는 언제나 구체적인 정황 속에서 이루어지며, 그 행위의 선악은 그 정황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10. 정황을 의지의 행위와 관련하여 보면 그 정황도 대상의 일부가 된다. 의지는 어떤 일을 원할 때 그 일에 포함된 모든 것, 곧 알고 있는 모든 정황도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으로 원한다. 따라서 알고 있던 정황이 바뀌면 의지의 행위도 흔히 바뀐다.174
11. 같은 정황을 의지 이외의 기능이 행하는 일과 관련하여 보면, 그 정황은 부수적인 조건일 뿐이다.
12. 이와 같이 목적 자체도 정황에 포함될 수 있다. 의지와 관련해서는 그렇지 않지만, 다른 기능과 행위에 관련해서는 그러하다.
13. 이러한 정황 때문에 일반적으로 또는 그 자체로는 선악이 정해지지 않은 행위가 많아도, 도덕적 숙고를 거친 개별 행위는 모두 선하거나 악하다.
14. 행위의 대상에 하나님의 뜻이 명하거나 금하는 것이 들어 있지 않으면 그 행위는 그 종류상 선악이 정해지지 않은 행위이다. 그러나 실제로 행할 때 각각의 행위를 살펴보면, 이성으로 숙고하여 행한 참된 인간 행위는 마땅한 목적을 향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아 선하거나, 바르게 지향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 악하다.
15. 어떤 이들은 선하거나 악하거나 선악이 정해지지 않은 행위 외에도 sonare in malum, 곧 말만 들으면 악하게 여겨지는 행위가 있다고 한다. 따로 떼어 보면 무질서해 보이지만 특정한 정황이 더해지면 선할 수도 있는 행위로, 사람을 죽이는 일175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그 행위들도 그 종류상 선악이 정해지지 않은 것에 속한다. 그 자체에 악이 있는 듯 보일 뿐이다. 사람을 죽음의 위험에서 구하는 일도 그 자체로 선해 보이며, 악하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도 이 겉모습에 속는 이가 많다. 이 행위들이 실제로 선하거나 악한지는 대상과 다른 정황에 달려 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거나 죄인을 풀어 주는 것은 악하다. 정당하게 죄인을 처형하거나 정당한 이유로 무고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선하다.
16. 행위가 온전히 선하려면 이 모든 원인과 조건이 함께 선해야 한다. 그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그만큼 그 행위가 악해진다.
17.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의 선행은 그 자체로 불완전하고 순수하지 않다.
18. 그러므로 우리의 선행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
19. 그러므로 거듭난 자들의 행위에는 공의에 따라 상을 얻을 만한 공로가 없다.
20. 다만 빚으로가 아니라 은혜로 주어지는 상(롬 4:4)이 때로는 이러한 불완전한 노력에도 주어진다. 마 5:12. 우리의 모든 복은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지만(롬 6:23), 우리 안에 풍성한 은혜의 열매가 우리 몫으로 계산되어 우리가 그 선물을 확신하게 되기 때문이다. 빌 4:17. 나는 너희의 몫으로 계산될 풍성한 열매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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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덕을 실천하는 행위는 내적이거나 외적이다. 고후 18:10–11〔원문 표기. 해당 구절은 8:10–11〕. 원하고, 행하고, 완수하는 것.
고린도후서 18:10-11
22. 내적 행위는 엄밀히 의지 자체의 행위이다.
23. 외적 행위는 의지와 구별되는 다른 기능의 행위이다. 흔히 내적 기능이라 부르는 지성이나 감각적 욕구의 행위일 수도 있고, 보통 외적 기능이라 부르는 실행 능력의 행위일 수도 있다.
24. 의지의 내적 행위에는 선악이 본질적으로 속한다. 따라서 그 행위가 본성상 같다면 도덕적으로도 같아야 한다. 그러나 외적 행위는 본성상 그대로이면서도 도덕적으로 달라져 선한 행위가 악해지거나 악한 행위가 선해질 수 있다. 가령 바른 목적으로 길을 나섰다가 악한 목적을 위해 계속 가는 경우이다.
25. 내적 행위와 그 명령에 따라 이루어지는 외적 행위의 선악은 하나이며 같다. 도덕적 종류에서 동일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것과 그 뜻을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두 가지 순종이 아니라 동일한 행위의 두 단계이다. 따라서 앞 단계의 선함은 뒤 단계에서 완성된다. 고후 8:11. 이제 그 일을 실행하여 마치라. 기꺼이 원했던 것처럼 실행도 이루어지게 하라.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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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내적 행위가 없는 외적 행위는 엄밀히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그러나 내적 행위는 외적 행위가 없어도 선하거나 악하다. 행위의 선함은 먼저, 또 주로 의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외적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그 의지를 받아 주시는 경우가 많다. 고후 8:13〔원문 표기. 인용은 8:12〕. 먼저 기꺼이 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가진 것에 따라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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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덕은 그 본성상 행위를 지향한다. 바르게 행하도록 하는 성향이므로 가만히 있지 않는다. 이처럼 덕의 내적 행위는 외적 행위를 지향하여 그것을 낳고, 그 행위에서 목적에 이른다. 약 2:22. 너는 믿음이 그의 행위를 도왔으며 행위로 믿음이 완성되었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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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다만 의도만을 두고 보면, 내적 행위에 외적 행위가 더해진다고 해서 그 선악이 그 자체로 커지지는 않는다. 외적 행위가 의지의 행위 자체를 지속시키거나 강화할 때에는 그에 따라 선악이 커진다.
29. 행위의 대상과 정황에 좌우되는 선악은 그 본성의 순서에서 외적 행위에 먼저 있으며 내적 행위에 뒤따른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나는 순서에서는 내적 행위에 먼저 있다. 각 사람에게 마땅한 몫을 주려는 뜻이 선한 까닭은 각 사람에게 그 몫을 주는 일이 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선함은 주는 행위보다 주려는 의지의 행위에 먼저 나타난다. 훔치려는 뜻이 악한 까닭도 훔치는 일이 악하기 때문이다. 의도의 순서에서는 외적 행위가 내적 행위의 원인이며, 실행의 순서에서는 내적 행위가 외적 행위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30. 목적에 달린 선악은 먼저 내적 행위에 있고 그 뒤 외적 행위에 있다. 목적을 의도하는 일 자체가 의지의 내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의를 원하는 것이 선하므로 의를 위하여 세상을 버리는 것이 선하며, 헛된 영광을 바라는 것이 악하므로 그것을 위해 구제하는 것이 악하다.
31. 내적 순종 없이 외적 행위로만 드러나는 순종은 위선이다. 그것은 순종의 그림자일 뿐이다.
32. 외적 행위가 없는 내적 순종은 불완전해도 참되다. 실제로 행하려는 의지가 있고 실행할 기회나 능력만 부족한 경우, 하나님께서는 외적 행위가 따를 때와 다름없이 그 순종을 받아 주신다. 고후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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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그러므로 결과만 보고 행위의 선악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사람 사이의 범죄를 판결할 때 결과가 가벼운 처분을 뒷받침한다면 더 관대한 쪽으로 기우는 것이 공평하며 하나님께서도 원하신다. 출 21:21 이하. 그러나 하나님의 법정에서는 다른 조건이 같다면, 외적 행위도 결과도 따르지 않은 내적 죄가 둘 다 따랐을 때만큼 크다. 마 5:28.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으면 마음으로 이미 그 여자와 간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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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그래도 내적 순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람 전체가 하나님께 복종해야 하므로 몸을 하나님께 드리고(롬 12:1),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전 6:20). 외적 순종을 향하지 않는 내적 순종은 참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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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로마 가톨릭 교도들은 이른바 의무 이상의 공로를 쌓는 행위177를 들어, 자기들 가운데 어떤 이들이 하나님의 율법이 명하는 것보다 더 뛰어난 행위를 한다고 자랑한다. 그들은 어떤 권고가 명령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특별한 완전함을 권하기만 한다고 상정하며, 그 권고를 지켜 그런 행위를 한다고 한다. 이는 율법도 복음도 모르는 게으른 자들의 어리석은 공상178이다.
36. 믿는 자들의 가장 선한 행위에도 용서받아야 할 불완전함이 따르지만, 그 행위 자체가 죄인 것은 아니다.

각주

174
물을 마시려는 의지에는 물이 마련되고, 물을 얻을 방편과 마실 방편이 있기를 바라는 뜻도 포함된다. 그러나 자녀도 마셔야 하는데 둘이 마시기에 물이 부족하다면, 갈증이 그대로여도 자신이 물을 마시려는 의지는 바뀔 수 있다. ↩
175
전투에서 사람을 죽이거나 살인자를 처형하는 경우가 그 예이다. ↩
176
제네바 성경. ↩
177
의무나 율법이 요구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노력이다. ↩
178
노쇠하여 품는 어리석은 공상, 또는 남에게 지나치게 쏟는 애정과 낭비를 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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