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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정수 - 윌리엄 에임스(16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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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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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준행은 신앙과 정의로 나뉜다.179
2. 이 구분의 실질은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나누실 때 정하셨으며, 그리스도께서 이를 밝혀 주셨다. 마 22:37. 같은 구분이 롬 1:18에서는 다른 말로 표현된다. 거기서는 사람의 모든 불순종을 불경건과 불의로 나눈다. 모든 순종이 경건과 정의에 속하지 않는다면 이런 구분은 성립할 수 없다. 딛 2:12에서 이 점은 더 분명해진다. 거기서 제시하는 세 가지 가운데 의와 경건은 새로운 순종의 두 부분을 이루며, 절제는 세속적 욕망을 부인함으로써 그 순종을 행하는 방식이나 방편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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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리스도인의 삶을 거룩함과 의로 나누는 더 흔한 구분도 같은 뜻이다. 눅 1:75, 엡 2:24〔원문 표기. 문맥상 4:24〕.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나누는 것도 같은 뜻이다.
누가복음 1:75, 에베소서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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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만 여기서는 신앙과 정의라는 이름을 쓴다. ‘신앙’은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모든 의무를 아우르는 가장 포괄적인 말이다. 또한 그 의무가 어떤 특별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속하는지 드러내는 데 가장 적합하다. 행 26:5, 약 1:26–27. 히브리서에도 이런 용례가 자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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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신앙은 하나님께 직접 영예를 돌리는 일들을 행하는 준행이다. 롬 1:21. 그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 않았고 감사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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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러므로 어떤 이들이 이 이름을 ‘다시 묶다’를 뜻하는 a religando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는 데에는 일리가 있다. 순종의 이 부분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붙어 그분께 매이듯, 그분을 직접 향하기 때문이다.
7. 신앙은 준행에서 첫자리를 차지한다. 첫째.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반드시 하나님 자신과 그분을 향하는 마음과 행위에서 시작해야 한다. 고후 8:5.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을 먼저 주께 드리고 그다음 우리에게 주었다. 둘째. 사람에게 행하는 의가 하나님께 대한 참된 순종이 되려면 신앙에서 힘을 얻어 행해야 한다. 하나님께 영예를 돌려야 그분께 대한 순종이 되며, 신앙적 마음에서 나와야 하나님께 영예를 돌릴 수 있다. 고전 10:31.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주 안에서’, ‘주의 이름으로’라는 말과(골 3:17)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하라’는 말도 이에 속한다(같은 장 제23절). 셋째. 신앙은 정의의 행위에 명한다. 그 행위가 이루어질 힘을 줄 뿐 아니라 그것을 인도하고 질서를 잡는 원인이 된다. 약 1:26.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스스로 신앙심이 있다고 여기면서 혀를 제어하지 않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그 사람의 신앙은 헛되다. 넷째. 정의의 모든 행위는 더 큰 일인 신앙의 행위를 하도록 준비시키는 한에서, 어느 정도 신앙을 목적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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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러므로 성경은 때때로 정의 자체를 신앙라 부른다. 약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앙적 예배는 고아들을 돌보는 것이다. 정의가 참된 신앙과 떨어질 수 없는 표지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신앙의 명령에 따라 행해야 하고 신앙에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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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러므로 신앙의 의무가 첫째이며 가장 중요하다. 마 6:33, 22:37.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첫째 되는 큰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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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 의무들은 순서에서 첫째이므로 먼저 돌보아야 한다. 같은 곳.
11. 시편 곳곳에서 이른 아침에 하나님을 찾는다고 하는 표현도 여기에 속한다.
12. 이 의무들은 존귀함에서도 으뜸이므로 가장 힘써 돌보아야 한다. 마 10: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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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러므로 신앙의 의무는 정의의 의무보다 더 힘을 모으고 분발하여 행해야 한다.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규범은 신앙의 의무에 직접 해당하기 때문이다. 마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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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이 말이 십계명의 둘째 돌판에 속한 의무를 행할 때 온 힘을 다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첫째. 온 힘을 다하는 것은 주로 신앙의 의무에서 요구된다. 둘째. 다른 의무들은 직접 이웃을 향하지만, 그 의무에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것은 이웃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이며 신앙의 힘으로 말미암는다. 셋째. 이웃을 사랑하는 행위 자체만 두고 보면 지나치게 힘을 기울일 수 있다. 물론 덕과 사랑 자체는 지나칠 수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는 어떤 의미에서도 지나치게 힘을 기울일 수 없다.
15. 그러므로 경건의 의무와 정의의 의무 가운데 함께 행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공평하고 분별 있게 비교한 뒤 경건의 의무를 앞세워야 한다. 마 12:46–48〔원문 표기. 첫 인용은 12:49〕, 눅 2:49. 보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이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제가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하는 줄 모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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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공평한 비교는 가장 중대한 일끼리, 덜 중대한 일끼리 견주어 그 비중을 바르게 살피는 것이다.
17. 하나님께서는 외적 행위보다 내적 마음으로 더 큰 예배를 받으시지만, 사람은 외적 행위를 더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정의와 자비에 속한 꼭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 때로는 신앙의 외적 행위를 생략할 수 있다. 마 12:1, 3–4, 7, 10, 12.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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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그렇게 한다고 신앙을 어기는 것도 아니다. 꼭 필요한 일을 행하도록 외적 행위를 생략하라고 명하는 것이 바로 신앙 자체이기 때문이다.
19. 신앙이 직접 향하는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그 대상이 되기에 온전히 합당하시므로, 신앙의 어떤 의무라도 다른 대상에게 돌리면 하나님께 큰 모욕이 된다. 하나님을 Zelotes 또는 Zelotypus, 곧 열심을 내시며 질투하시는 분이라 부르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20. 신앙은 하나님의 충족하심과 역사하시는 능력에서 빛나는 신적 탁월함을 바라본다. 이는 한 가지 속성이 아니라 그분의 모든 속성에서 드러나는 완전함이다. 출 34:6–8. 여호와, 여호와, 능하신 하나님이시며 긍휼이 많고 은혜로우시고 오래 참으시며 인자와 진리가 풍성하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속성에는 우리 안에 신앙을 일으키는 힘이 있다. 성경은 때로 신앙을 특별히 긍휼과 연결한다. 시 130:4. 주께 용서하심이 있으므로 사람들이 주를 경외하며 예배한다. 때로는 공의와 연결한다. 신 4:24, 히 12:29. 은혜를 받아 경외와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자.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다. 다른 모든 속성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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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그러므로 신앙은 생명에 충분하시며 생명을 이루시는 원인이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직접 흘러나온다.
22. 신앙이 하나님을 생명의 첫 근원이자 지고한 주로 바라본다는 말은 이런 뜻이다. 따라서 로마 가톨릭 교도들이 하나님을 생명의 첫 근원으로 바라보는 신앙 행위는 오직 하나님께만 해야 하지만 다른 신앙 행위는 피조물에게도 할 수 있다고 구별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하나님께 생명의 첫 근원으로서 드려야 하지 않는 신앙 행위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23. 신앙에 고유한 행위는 하나님께 영예를 돌리는 일이며, 이를 예배(출 12:25–26) 또는 경배(요 22:23 [개정본에는 요 12:23 표기])라 한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되려면 어떤 의미에서든 하나님께 드리는 선을 담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내적인 선을 더할 수는 없다. 더할 수 있는 것은 외적인 선인 영예, 곧 그분의 탁월함을 증언하여 그분의 영광과 명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이것이 피조물이 하나님께 할 수 있는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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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그러므로 하나님을 합당하고 존귀하게 여기는 일과 그 존중을 나타내는 다른 행위들이 신앙이 직접 다루는 소재라 할 수 있다. 사람의 모든 바른 행위는 하나님의 영예와 영광에 돌릴 수 있는 한 신앙의 소재 또는 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동일한 행위도 계명에 복종한다는 면에서는 순종이라 하며, 하나님께 영예를 돌린다는 면에서는 신앙과 예배라 한다.
25. 영예를 돌리는 일, 곧 신앙적 예배의 고유한 방식은 영혼 자체와 내적 정서와 의지의 행위를 예배받는 대상에게 복종시키는 것이다.180
26. 영혼과 그 내적 행위에 관하여 사람은 어떤 피조물에게도 직접적으로, 그 자체로 복종하지 않는다. 다만 영혼이 몸과 결합하고 내적 행위가 외적 행위와 결합해 있는 만큼, 사람은 그러한 형편에서 윗사람인 피조물에게 마땅히 복종해야 한다.
27. 하나님께 이 영예를 돌려야 하는 것은 그 일이 합당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너그러이 베푸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영예는 받으시는 분이 지니신 권리에 따라서도 드려야 한다. 그 권리가 매우 엄격하여, 갚아야 할 의무의 면에서는 모든 정의의 요구를 뛰어넘는다. 다만 주고받는 것의 동등함에서는 정의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28. 그러므로 예배의 본질이나 조건, 법이나 일반 관습, 또는 예배하는 이의 의도와 정함에 따라 참 하나님 외에 다른 이에게 신앙적 영예를 돌린다면, 적어도 그만큼은 새롭고 거짓된 신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일이다.
29. 하나님께 이런 신앙적 예배를 드리지 않는 자는 불경건한 자이며, 참 하나님 외에 다른 이에게 드리는 자는 우상 숭배자이다. 행 10장, 계 19:10,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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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는 가장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라틴어에서는 거룩한 일과 무관한 일에도 매우 세심한 주의를 뜻하는 비유로 ‘신앙’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이로 보아 이방인들도 본성의 빛으로 신앙에 대한 주의를 다른 모든 일보다 앞세워야 함을 알았다.
31. 또한 양심의 두려움은 신앙적 예배에 속하므로, 양심의 모든 거리낌을 religio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로써 본성 자체가 사람의 양심은 무엇보다도 가장 직접적으로 신앙을 향한다고 가르침을 알 수 있다.
32. 교회 전체가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방식을 고백한다는 점에서, 교회의 그러한 상태를 ‘그리스도교’라고 부르는 것은 마땅하다. 그런 상태나 고백은 신앙의 덕과 행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33. 특별히 제정하여 신앙의 도구로 쓰도록 정한 것들도 그 상태와 고정된 관계 때문에 ‘신앙적’이라고 부른다.
34. 수도사들은 어떤 가공의 완전함을 실천하고자 독특한 생활 방식을 스스로 택했다. 로마 가톨릭 교도들은 아무런 근거 없이,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부당하게도 그 생활 방식을 ‘신앙’라 하고 그런 수도사들을 ‘신앙적인’ 사람이라 부르곤 한다.
35.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36. 참된 신앙은 오직 하나이다.

각주

179
[Old Path Bible 주] 이 책에서 십계명이 이렇게 다뤄지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인용은 각 계명의 첫 구절 또는 첫 어구이다.
제5장 믿음 첫째 계명 —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출 20:3)
제13장 제정된 예배 둘째 계명 —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출 20:4)
제14장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방법 셋째 계명 —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출 20:7)
제15장 예배 시간 넷째 계명 —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출 20:8)
제16장 이웃을 향한 정의와 사랑 둘째 돌판 — 정의와 사랑
제17장 이웃을 공경함 다섯째 계명 — 네 부모를 공경하라. (출 20:12)
제18장 이웃을 향한 인애 여섯째 계명 — 살인하지 말지니라. (출 20:13)
제19장 정결 일곱째 계명 — 간음하지 말지니라. (출 20:14)
제20장 교환적 정의 여덟째 계명 —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출 20:15)
제21장 진실을 말함과 정직성 아홉째 계명 —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출 20:16)
제22장 만족 열째 계명 —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출 20:17) ↩
180
이 항과 뒤의 네 항은 하나님만 예배해야 할 의무를 어기지 않으면서 사람인 윗사람에게 바르게 복종할 의무를 다룬다. 이로써 합당한 복종과 우상 숭배를 구별한다. ↩
◀ 제3장 선행46 / 64제5장 믿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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