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본성에 따른 예배는 하나님의 본성에 근거한다. 하나님께서 계시하고 정하신 율법이 없더라도, 하나님의 본성을 합당하게 묵상하여 바르게 깨달아 안다면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이 예배에서 해야 할 모든 의무를 알아볼 수 있다.
4. 하나님의 본성을 바르게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 소망을 두며, 그분을 사랑하고 부르며, 모든 일에서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함을 반드시 인정한다.
5. 그러므로 본성에 따른 이 예배는 구원에 반드시 필요하다. 시 79:6, 렘 10:52〔원문 표기. 해당 구절은 10:25〕, 살후 1:8. 주를 알지 못하는 민족들과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나라들에 주의 진노를 쏟으소서.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은 우리의 공로나 순종의 어떤 효력으로 말미암지 않는다. 그러나 순종의 이 부분은 영생을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믿음과 본질적으로 결합되어 있으므로, 실제로 행할 때 그 믿음과 분리될 수 없다.
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7. 첫째 계명은 본성에 따른 예배를 명하되, 내적 예배뿐 아니라 외적 예배도 명한다.
8.첫째. 내적 순종과 외적 순종은 하나이므로, 한 계명에 동일한 내적 예배와 외적 예배가 담겨 있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친히 풀이하셨듯이 둘째 돌판의 각 계명은 내적 순종과 외적 순종을 함께 명한다. 마 5장. 그렇다면 첫째 돌판의 계명들, 특히 그 첫째이자 으뜸인 계명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셋째. 첫째 계명은 내적 예배만을, 둘째 계명은 외적 예배만을 명한다고 구분한다면, 첫째 계명은 속사람을 구속하고 둘째 계명은 겉사람과 몸만을 구속하게 된다. 이는 이치에 어긋난다.
9. 본성에 따른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다.181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이시라는 점에서, 또는 그분이 그 자체로 선하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10. 우리의 선이신 하나님을 향하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바라보는 믿음과, 장차 우리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는 점을 바라보는 소망으로 나뉜다.
11.믿음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들고 그분이 우리 앞에 내놓으신 것을 얻기 위해 그분을 의지하는 덕이다.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자는 하나님께서 참되심을 인쳤다. 요 1:12. 그분을 영접한 자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
12.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는 다섯 가지가 함께 작용한다. 첫째. 하나님께서 증언하신 것을 아는 일이다. 둘째.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마음이다. 이 마음으로 우리는 그분의 증언을 가장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셋째. 증인이신 하나님을 향한 그 마음 때문에 그분이 증언하신 것에 동의하는 일이다. 넷째.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것을 얻으려고 그분을 의지하는 일이다. 다섯째. 그 증언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 자체를 택하거나182 붙드는 일이다.
13. 첫째는 지성에 있다. 그러나 이것이 믿음을 이루지는 않는다. 믿지 않는 자와 이단자와 배교자, 심지어 마귀들도 그러한 지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14. 둘째와 넷째와 다섯째는 의지에 있으며, 덕이자 신앙의 행위인 믿음을 이룬다.
15. 셋째는 지성에 있으나 의지에 이끌려 이루어진다. 이는 엄밀히 말해 믿음의 덕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이다.
16. 믿음은 택하거나 붙드는 데서만 완성되므로, 바로 그것으로 믿음을 정의해야 한다.
17. 그러므로 성경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께 붙는다고 하여 믿음의 본성을 잘 밝혀 준다. 수 23:6〔원문 표기. 해당 표현은 23:8〕, 행 11:23, 고전 6:17. 또한 그들이 진리의 길을 택하고 하나님의 증거를 붙든다고 한다. 시 19:30–31〔원문 표기. 해당 구절은 119:30–31〕.
6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사도행전 11:23
23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고린도전서 6:17
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18. 우리는 믿음으로 먼저 하나님께 붙고, 그에 따라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내놓으신 것들을 붙든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이 믿음의 첫째 대상이며,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것이 둘째 대상이다.
19.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께 연합시킨다는 점에서 우리의 생명이며, 하나님께 드리는 덕과 의무라는 점에서 그 생명의 행위이다. 그러므로 1권에서는 생명과 구원을 얻는 일과 관련하여 믿음을 정의했고,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믿도록 제시하시는 모든 것과의 일반적인 관계에 따라 정의했다. 하나님의 경고 자체는 우리가 받을 선을 제시하지 않으므로 믿음이 거기에 대해 모든 작용을 다할 수 없다. 하나님의 명령 자체도 받을 선이 아니라 행할 선을 밝히므로 마찬가지이다. 단순한 진술도 그 자체로는 어떤 선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약속은 우리가 붙들 선을 제시하므로 믿음은 약속에서 그 작용을 온전히 발휘한다. 그래서 우리 신학자들은 주로 약속에서 믿음의 대상을 찾는다.
20. 믿음이 지성에 있다고 보는 이들도 지성이 동의하려면 의지의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사람의 말을 믿는 일에서도 누군가를 신뢰하는 것은 자발적인 일이라고 한다. 믿음이 의지에 의존한다면 믿음의 첫 시작은 반드시 의지에 있어야 한다.
21. 이 믿음의 objectum quod, 곧 질료적 대상은 하나님께서 믿으라고 계시하고 제시하신 모든 것이다. 성령을 통해서든 말씀을 통해서든, 공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마찬가지이다. 행 24:14. 나는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습니다. 요 3:33.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자.
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요한복음 3:33
33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22. 그러므로 어떤 것이 우리에게 믿음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도 교회가 그것을 제시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다른 선지자들이 교회의 도움을 거치지 않고 하나님께 직접 계시받은 것에 동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성경과 건전한 이성에 모두 어긋난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의 가장 학식 있는 이들은 이런 논거에 맞서 자기들의 거짓 교회가 내세우는 권위를 지키려고 그 주장을 받아들이고 옹호할 수밖에 없다.
23. 믿음이 직접 대하는 대상은 언제나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명제나 진술이다. 그러나 믿음이 궁극적으로 이르는 대상, 곧 그 명제가 가리키며 믿음으로 그 명제에 동의하게 하는 것은 어떤 선으로 받아들이는 실재 자체(ens incomplexum)이다. 롬 4:21. 약속하신 분께서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다. 히 11:13.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했으나 멀리서 보고 확신하여 맞아들였다.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24. 이름난 스콜라 학자들도 인정하듯, 믿는 이의 행위는 명제나 진술에서 끝나지 않고 그것이 가리키는 실재에 이른다. 우리가 명제를 세우는 것은 그 명제를 통해 사물을 알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믿는 이의 행위가 궁극적으로 이르는 것은 명제가 주로 가리키는 실재 자체이다.
25. 믿음의 objectum quo, 곧 형식적 대상은 하나님의 참되심 또는 신실하심이다. 히 11:11. 약속하신 분을 신실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믿음을 규정하는 형식적 근거는 말씀하시는 분의 참되심이다. 곧 어떤 것을 확실하게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참되심 또는 신실하심이다. 믿음은 증언하는 이의 권위에 의지한다는 점에서 의견이나 학문적 지식이나 경험이나 시각을 비롯한 감각과 구별된다. 하나님의 권위는 그분의 참되심 또는 신실하심에 있다. 딛 1:2.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마땅히 믿어야 할 것은 모두 참되다’는 명제는 참되다. 하나님께서 참되다고 증언하신 것만이 그렇게 믿어야 할 대상이며, 하나님께서는 참되신 분으로서 증언하신다. 모든 것을 아는 증인의 참되심은 그 증언의 진실성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마땅히 믿어야 할 것은 모두 참되다. 사도 바울도 이 논증을 분명히 확인하고 사용한다. 고전 15:14–15.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전파도 헛되고 너희 믿음도 헛되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셨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곧 증언이 참되지 않으면 증인도 거짓되다. 하나님께서 증언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참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이것을 증언하시므로 이것은 참되다’는 확고한 결론도 아무 효력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직접으로든 간접으로든, 그 자체로든 부수적으로든 거짓에 동의하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없다.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줄 앎이라
디도서 1:2
2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고린도전서 15:14-15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26. 그러므로 대상에 관한 믿음의 확실성은 매우 굳다. 그 믿음이 믿는 이의 마음에서 굳어질수록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린다. 롬 4:20. 그는 믿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이 굳세어져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는 약속하신 분께서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다. 때때로 우리 안의 믿음이 흔들리는 것은 믿음의 본성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불완전함 때문이다.
27. 성경은 두 대상183을 모두 충분하고 확실하게 제시한다. 곧 믿어야 할 것과 그것을 믿는 근거이다. 롬 16:26. 이제 드러나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선지자들의 글을 통해 모든 민족에게 알려졌으니, 그들이 믿음으로 순종하게 하려 함이다. 딤후 5:15〔원문 표기. 인용은 3:15〕.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너를 지혜롭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다.
26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디모데후서 3:15
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28. 믿는 주체인 우리 마음에는 믿음을 일으키시는 성령의 빛과 증언이 필요하다. 그러나 믿음으로 받아들일 대상에 관해서는 믿어야 할 내용이든 믿는 근거와 방식이든, 성경에 없는 무엇을 더 요구할 필요가 없다.
29.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근거를 교회의 권위나 믿음을 준비시키는 설득과 권유, 곧 흔히 동기라고 부르는 외적 논거에서 찾을 수 없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정하는 첫째이자 고유한 근거는 성경 자체와 그 저자이신 하나님께서 성경에 새겨 두신 권위이다. 믿는 행위 자체의 고유한 원인은 성령의 역사이다.
30. 그러므로 믿음이 처음 시작하여 최종적으로 의지하는 원리는 성경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믿음과 행실의 충분한 규범이라는 사실이다. 벧후 1:19–20.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의 어떤 예언도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다.
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34. 성경이 모든 면에서 참되다고 믿는 이는 성경에 담긴 모든 것을 암묵적으로 믿는다. 시 129:86 및 28, 33절〔원문 표기. 인용은 시 119:86, 18, 33〕. 주의 모든 계명은 진리입니다. 제 눈을 열어 주의 율법에 담긴 놀라운 것들을 보게 하소서. 주의 규례의 길을 가르치소서. 제가 끝까지 그 길을 지키겠습니다. 다윗은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들도 놀랍고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고 믿었다.
35. 이 암묵적 믿음은 선하고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구원에 충분하지 않다. 그것만 있을 때에는 참된 믿음의 성격도 갖지 못한다. 의지는 전혀 분명히 알지 못하는 것에 실제로 마음을 두고 그것을 선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롬 20:14〔원문 표기. 인용은 10:14〕. 듣지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는가?
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고린도후서 4:3
3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38. 그리스도께서 오신 지금은 이전보다 더 명시적인 믿음이 요구된다. 고후 3:18. 교회에서 다른 사람을 이끄는 이들에게는 일반 신자보다 더 명시적인 믿음이 요구된다. 히 9:12 [개정본에는 히 13:17 표기]. 끝으로 더 충분히 가르침을 받을 기회가 있는 이들에게는 다른 이들보다 더 명시적인 믿음이 요구된다. 눅 12:48.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다.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히브리서 9:12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히브리서 13:17
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누가복음 12:48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39. 믿음의 외적 행위는 믿음을 고백하고 공언하며 드러내는 일이다. 이는 그에 알맞은 순서와 자리에서 구원에 필요하다. 롬 10:9–10. 마음으로는 언제나 고백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벧후 3:15〔원문 표기. 문맥상 벧전 3:15〕),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을 세우는 일이 요구할 때에는 실제로 고백해야 한다.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베드로후서 3:15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베드로전서 3:15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40. 이 땅의 생명을 잃으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고백하는 일은 진리를 증언하고 하나님께 가장 큰 영예를 돌린다. 그러므로 특별히 이를 순교라 하고, 그렇게 하는 이들을 증인, 곧 순교자라 한다. 계 2:13. 순교가 요구되는 자리에서는 믿음의 고백만큼이나 필요하므로,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고서는 이를 거부할 수 없다. 마 10:33, 39, 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