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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정수 - 윌리엄 에임스(16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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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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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도록 마음을 기울이는 덕이다. 롬 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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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망은 두 면에서 하나님을 향한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가 기다리는 대상이시다. 소망의 주된 대상은 하나님 자신과 그분이 우리와 연합하시는 행위이다. 벧전 1:13. 너희에게 주어지는 은혜에 소망을 두라.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을 이스라엘의 소망(렘 1:4, 8〔원문 표기. 해당 표현은 14:8〕), 또 소망의 하나님(롬 15:13)이라 한다. 그분이 소망을 일으키고 주시는 분이라는 점보다 우리가 소망을 두는 분이라는 점에 뜻이 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가 기다리는 모든 선을 이루고 주시는 분이다. 시 37:5–6.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고 그분을 의지하라. 그분이 이루실 것이다. 소망은 선을 얻으려고 하나님을 향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 자신을 얻으리라고 바라본다. 렘 17:7.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복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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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듯 피조물을 의지할 수 없는 이유는 소망의 형식적 대상이 피조물에게 없기 때문이다. 시 146:3. 방백들이나 구원할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우리를 이롭게 하고 도울 능력을 어느 정도 주셨으나, 그 능력을 발휘하는 일은 언제나 하나님께 달려 있다. 시 107편. 그분이 말씀을 보내 그들을 고치셨다. 시 137:1〔원문 표기. 인용은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시면 세우는 자들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않으시면 파수꾼이 깨어 있음이 헛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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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러므로 누군가에게서 무엇을 바란다는 말은, 그 피조물을 통하여 하나님께 그것을 바란다는 뜻이거나, 하나님을 향한 소망과 구별되는 인간적 기대를 뜻한다. 그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의 소망이라 할 수 없다.
5. 믿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두는 소망은 우리에게 선을 베푸시는 원인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를 바라본다. 벧전 1:13, 골 1:27. 은혜에 소망을 두라. 그리스도는 영광의 소망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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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하나님께 두는 소망은 하나님과 영원한 복을 바라볼 뿐 아니라, 믿음이 하나님의 약속에서 붙드는 모든 것을 하나님 안에서, 또 하나님께로부터 바란다. 그 자체로 일시적인 것이라도 그러하다. 히 11:1, 고후 1:10. 다만 소망은 무엇보다 영생을 바라본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소망이 환유법으로 우리가 바라는 구원이나 영생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갈 5:5, 롬 8:24, 딛 2:13. 반대로 구원이 구원의 소망을 가리키기도 한다. 엡 6:17과 살전 5:8을 비교하라. ‘구원의 투구’는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뜻한다. 또한 영생이나 영광을 소망의 고유한 대상으로 흔히 제시한다. 살전 5:8, 딛 3:7. 영생의 소망. 롬 5:2. 영광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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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소망의 대상은 선한 것이고 장차 올 것이며 얻기 어렵지만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 조건은 모두 하나님의 약속에서 충족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도움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가장 큰 선을 언제나 약속하신다. 약속의 효력으로 그 일은 가능성이 있는 데 그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진다.
8. 소망이 그 대상을 향해 하는 행위를 기다림이라 한다. 인간의 기대처럼 불확실하거나 가능성에 기대어 추측하는 일이 아니라 가장 확실하게 기다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롬 3:25〔원문 표기. 첫 인용은 8:25〕, 빌 1:20.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인내로 기다린다. 나의 간절한 기다림과 소망에 따라. 구약에서 흔히 ‘소망’으로 옮기는 미크웨도 본래 기다림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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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 확실성은 믿음에서 소망으로 온다. 믿음이 소망의 토대이므로, 먼저 믿음으로 믿지 않은 것을 소망하지는 않는다. 갈 5:5. 우리는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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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믿음은 약속된 것을 붙들고 소망은 약속된 것을 기다린다. 그러므로 믿음과 소망의 차이는 같은 약속을 현재의 것으로 대하느냐, 장차 올 것으로 대하느냐에 있다.
11. 로마 가톨릭 교도들은 믿는 자가 소망의 확실성으로는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으나, 통상적인 방편으로 믿음의 확실성에 이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믿음과 소망의 확실성은 하나이며 같으므로184 그 구분은 근거가 없다. 같은 이유로 성경, 특히 구약에서는 ‘소망’이 ‘믿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12.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의인들의 영도 장차 올 선을 기다린다.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확실성에 있지 않고 다음 세 가지에 있다. 첫째. 우리의 소망은 거울을 보듯 약속 안에서 하나님을 희미하게 보는 믿음에 근거한다(고전 13:12). 그들의 기다림은 직접 보는 데 근거한다. 둘째. 우리는 수고하며 힘써 소망하지만 그들은 어려움 없이 기다린다. 셋째. 우리의 기다림은 불완전하지만 그들의 기다림은 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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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러므로 오는 생에는 믿음과 소망이 없어진다고 흔히 말하지만, 이는 그 본질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불완전한 정도와 단계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고전 13:10. 사라지는 것은 불완전함이며, 믿음과 소망 자체는 그 본질에서 온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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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그러므로 장차 올 선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의 확신은 굳어진 소망이다. 이 확신은 사도가 열거한 신학적 덕, 곧 믿음과 사랑과 소망 가운데 하나에 속해야 한다. 고전 13:13. 믿음은 대상을 이미 현재에 있는 것으로 붙들어 그것이 실재하는 것처럼 여기게 한다. 히 11:1. 사랑은 우리 자신의 유익을 바라보지 않는다. 고전 13:5. 그러므로 이 확신은 소망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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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그러므로 소망의 자연스러운 열매는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이다. 히 3:6. 우리가 기뻐하는 소망. 벧전 1:3, 6. 살아 있는 소망, 그 안에서 너희가 기뻐한다. 소망은 가장 큰 선을 가능성으로만 여기지 않고 반드시 올 것으로 바라본다. 마침내 실제로 누릴 것을 확신하게 하여, 어느 정도는 이미 그것을 소유한 듯하게 한다. 롬 8:24. 우리는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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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이 행위185가 이루어지는 방식은 그 대상이 장차 올 것이며 약속되었다는 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소망은 본질상 눈에 보이는 것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롬 8:24.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다. 보는 것을 누가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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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인내는 소망의 열매이며 소망에 따른다. 우리는 현세에서 여러 악과 싸우고 바라던 위로가 없어도, 복을 구하고 기다리면서 하나님께 한결같이 붙든다. 사 8:17. 얼굴을 숨기신 여호와를 기다리며 그분을 바라본다. 롬 8:25.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인내로 기다린다. 살후 3:5. 그 인내의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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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이 인내의 열매는 잠잠함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쉬며, 성급하게 서두르거나 하나님께 맞서도록 부추기는 모든 육적 충동을 억누른다. 시 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끊임없이 그분을 기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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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우리가 바라는 선이 우리에게 속함을 확신하게 하는 모든 근거는 소망을 굳게 하고 자라게 한다. 롬 5:4.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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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이 근거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있다는 표지가 첫자리를 차지한다. 요일 3:14, 19.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하므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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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이 일부는 하나님의 은혜에, 일부는 우리 자신의 공로에 근거한다는 로마 가톨릭 교도들의 말은 그릇되다. 믿음과 회개와 행위와 선한 양심이 소망을 굳게 하고 자라게 하며 일깨운다는 말이 옳다. 이런 것들이 앞서 근거가 됨으로써 참되고 살아 있는 소망이 생겨난다고 할 수 있다. 히 10:22–23, 벧전 3:23 [원본, 개정본 표기].
히브리서 10:22-23, 베드로전서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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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소망은 안전하고 굳건한 닻처럼 영혼을 든든히 한다. 히 6:19. 이로써 우리는 우리 영혼을 얻는다. 눅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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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이렇게 마음이 굳건해지면 언제나 거룩함을 추구하게186 된다. 요일 3:3. 그분께 이 소망을 두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이 깨끗하신 것처럼 자신을 깨끗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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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소망이 부족한 쪽에서 소망에 대립하는 첫째는 형벌의 고통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시 27:3. 소망은 선을 기다리는 것이고, 이 두려움은 악을 예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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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다만 이 두려움이 적절하고 믿음으로 조절된다면, 그 대상에서는 언제나 소망에 대립하더라도 죄인에게서 소망과 덕 자체를 거스르는 악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덕의 성격과 본성을 띤다. 대하 34:27. 네가 이곳을 두고 하신 말씀을 듣고 마음이 부드러워져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다. 그 이유는 두려움과 소망이 동일한 관점에서 동일한 대상을 향하여 대립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망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고, 두려움은 우리 죄가 마땅히 받을 것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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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부족함의 면에서 소망에 더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것은 절망이다. 절망은 소망을 잃은 상태이며, 자신이 소망을 잃었음을 느끼고 바라던 것이 불가능하거나 적어도 이루어지지 않으리라고 여기는 것이다. 가인과 유다가 그 예이다. 창 4:13–14, 마 2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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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이 절망은 언제나 중대한 죄이다. 사람들이 흔히 자신이나 다른 피조물에게 두는 기대를 잃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기대를 잃는 일은 흔히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좋은 계기가 된다. 여기서 절망은 하나님께 두는 소망을 잃는 것이다. 소망이 믿음에서 시작하듯 이런 절망은 언제나 불신앙에서 시작한다.
28. 그러나 마귀들과 정죄받은 자들의 절망은 죄의 성격보다 형벌의 성격을 띤다. 절망은 마땅히 소망할 것을 소망할 때에 소망하지 않는 결핍187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단지 소망이 그쳤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앞의 뜻에서는 율법에 어긋나므로 언제나 죄이지만, 뒤의 뜻에서는 반드시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29. 절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그 선을 주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여기거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실 뜻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첫째 이유에 근거한 절망은 언제나 죄이다. 둘째 이유의 경우, 그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안다면 죄가 아니다.
30.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은혜와 영광에 참여시키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이 생이 끝나기 전에 통상적인 방편으로 분명히 알게 되는 사람은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 그러므로 이 생에서 사람이 품는 절망은 모두 죄이다.
31. 지나침의 면에서 소망에 대립하는 것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이로써 우리는 어떤 선을 경솔하게 기대한다. 신 29:19, 렘 7:4, 8–10. 듣고도 그렇게 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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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이 경솔한 자신감은 선을 기대하면서 때로 피조물에 의지한다. 렘 17:5, 딤전 6:17. 때로는 어느 정도 하나님을 의지하기도 하지만, 약속과 믿음 없이 그릇되게 의지한다. 회개하지 않거나 계속 죄 가운데 살기로 하면서 용서와 구원을 기대하는 경우, 또는 하나님의 본성이나 계시된 뜻에 맞지 않는 다른 것을 그분께 기대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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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이런 자신감이 죄인 까닭은 참되고 경건한 소망으로 하나님께 지나치게 소망을 두어서가 아니다. 그런 소망은 결코 지나칠 수 없다. 아무 근거 없이 가볍고 경솔하게 바라거나, 바라서는 안 될 것까지 바라기 때문에 죄이다.
34. 결과의 면에서는 수치나 낭패가 소망에 대립한다. 시 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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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84
믿음과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을 공통으로 가지므로 둘 다 확실하다. ↩
185
곧 기다리는 행위이다. 위 제8항을 보라. ↩
186
주의 깊게 살피고 힘을 기울이는 일이다. ↩
187
어떤 것을 잃거나 빼앗긴 상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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