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옛신앙 라이브러리>>신학의 정수 - 윌리엄 에임스(1642년)

신학의 정수 - 윌리엄 에임스(1642년)

English|한국어|대역차례 ◀ ▶
제7장 사랑
모두 펼치기 | 모두 접기
1. 사랑은 하나님을 최고의 선으로 사랑하는 덕이다. 시 106:1, 118:1, 136:1.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분은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사랑의 열매인 찬양의 기쁨은 그 원인인 사랑과 같은 첫째 대상을 갖는다. 그러므로 인자하신 행위에서 특별히 빛나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찬양과 사랑의 고유한 대상이다.
구절 보기 ▾
2. 사랑은 결과가 원인에 뒤따르듯 본성의 순서에서 믿음과 소망에 뒤따른다. 믿음과 소망으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마음에 부어진 그분의 사랑을 얼마간 맛보기에 하나님을 사랑한다. 요일 4:16, 19.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알고 믿었다.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으므로 우리가 그분을 사랑한다.
구절 보기 ▾
3. 그러므로 사람 안에 영적 집을 세우는 첫 토대는 믿음이다. 집이 믿음에서 시작될 뿐 아니라 믿음이 모든 부분을 떠받치고 품기 때문이다. 믿음은 열매 맺을 힘을 준다는 점에서 뿌리와도 같다.
4. 하나님을 향한 희미하고 먼 성향은 믿음에 앞선다. 모든 피조물에게도 그 그림자가 어느 정도 있다. 행 17:27. 그들이 주를 찾게 하려 하심이니, 혹 찾다가 그분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참된 사랑이라기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어 하는 데 그치는, 효력 없는 바람이다.
구절 보기 ▾
5. 하나님을 본성의 시작과 목적으로 사랑하는 것과 은혜의 시작과 목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나누어 각각 자연적 사랑과 초자연적 사랑이라 하는 스콜라 학자들의 구분은 헛된 생각이다. 타락한 사람은 믿음 없이 본성의 힘으로 하나님을 무엇보다 사랑할 수 없다. 그들이 자연적이라 부르는 사랑으로도 그러하다.
6. 참된 사랑에는 언제나 세 가지가 들어 있다. 연합을 바라는 마음, 누리며 기뻐하는 마음, 상대의 선을 바라는 선의이다. 이것들이 사랑의 구성 부분이라 할 수 있다.
7. 연합을 바라는 사랑은 하나님과 하나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다. 고후 5:8. 우리는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
구절 보기 ▾
8. 하나님도 우리와 연합하기를 바라신다. 엡 2:4, 13. 그분은 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다. 멀리 있던 너희가 가까워졌다. 하나님의 사랑은 넘치는 선하심에서 나온다. 그분은 우리에게서 이익을 기대하지 않으시며, 우리는 하나님께 무익한 종이다. 눅 17:10, 요 22:2–23 [개정본에는 욥 22:2–3 표기]. 그러나 우리의 사랑은 선이 부족하여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데서 나온다. 고후 5:4. 우리가 짐을 지고 탄식하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켜지기를 바란다.
구절 보기 ▾
9. 그러므로 하나님과 연합하고자 하는 우리의 사랑은 어느 정도 갈망의 사랑이다. 하나님에게서 유익과 영원한 복을 얻기를 소망하여 그분을 우리 자신의 몫으로 바라기 때문이다.
10. 그러나 이 사랑의 가장 높은 목적은 하나님 자신이어야 한다.
11. 기뻐하는 사랑은 하나님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좋게 여기고 그분의 지극히 뛰어난 선하심 안에서 쉬는 마음이다. 계 7:12.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바란다. 아멘.
구절 보기 ▾
12. 하나님도 우리를 기뻐하시는 사랑을 지니신다. 히 13:16. 그분은 친히 우리에게 주신 선한 것들을 기뻐하시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조금도 의존하지 않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완전함을 기뻐한다.
구절 보기 ▾
13. 선의의 사랑은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고, 그분의 영광에 속한 모든 것을 그분께 돌리기를 바라며 힘쓰는 마음이다. 계 4:10–11. 그들은 엎드려 보좌 앞에 관을 던지며 말했다. 주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고전 10:31.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구절 보기 ▾
14.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의를 품으시고 뜻하신 선을 주어 우리를 선하게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께 선을 더할 수 없고, 그분의 선하심을 마음으로 인정하며 말로 알리고 행위로 어느 정도 드러낼 수 있을 뿐이다.
15. 하나님과 믿는 자 사이의 서로 사랑함에는 우정의 성격이 있다. 요 15:15. 아버지께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렸으므로 너희를 벗이라 불렀다.
구절 보기 ▾
16. 이 우정에는 사람 사이의 우정과 같은 동등함은 없으나, 하나님과 믿는 자가 나누는 내적 교통에서 가능한 만큼의 동등함이 나타난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자신의 비밀을 밝히신다. 시 25:14, 요 15장.
구절 보기 ▾
15. 제15절. 또한 그들과 친밀하게 지내신다고 한다. 계 3:26〔원문 표기. 인용은 3:20〕.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 요 14:23.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내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실 것이며, 우리가 그에게 가서 함께 거하리라.
구절 보기 ▾
17. 사랑에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키고 이루는 일이 내포되어 있다. 롬 13:10, 요일 2:5, 3:18.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을 닮으려 힘쓰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할 수 없다. 요일 4:17. 이로써 우리의 사랑이 온전해지니, 그분이 어떠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러하다.
구절 보기 ▾
18.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그분을 절대적으로 가장 높은 선이자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이나 그분을 사랑하는 일을 궁극적으로 다른 무엇을 위한 방편으로 삼으면 삯을 바라는 사랑이 된다. 요 6:26.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떡을 먹고 배불렀기 때문이다.
구절 보기 ▾
19. 그러나 하나님을 우리의 상으로 사랑할 수 있으며(창 15:2 [개정본에는 창 15:1 표기]), 다른 좋은 것들을 상으로 바라보면서 그분을 사랑할 수도 있다(창 17:2).
구절 보기 ▾
20.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세 면에서 가장 높아야 한다. 첫째. 대상의 면에서 누구에게보다 하나님께 더 큰 선을 바라야 한다. 둘째. 가치의 면에서 우리 생명보다도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앞세워야 한다. 마 10:37, 눅 14:26. 가장 작은 계명 하나를 어기기보다 차라리 죽기를 택할 정도여야 한다. 셋째. 강도의 면에서 모든 기능을 다하여 힘껏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신 6:5. 너의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구절 보기 ▾
21. 이런 뜻에서 하나님만 사랑해야 한다는 신학자들의 말은 옳다. 하나님은 그 자체로, 또 사랑의 모든 부분인 선의와 연합을 바라는 마음과 누리며 기뻐하는 마음에서 가장 높은 정도로 사랑해야 한다. 이웃도 일정한 면에서 다른 목적을 위하여, 부분적으로 그리고 더 낮은 정도로 사랑해야 한다.
22. 하나님 앞에 있는 일과 그분이 내리실 형벌 때문에 괴로워하는 두려움은 이 사랑에 대립한다. 요일 4:18.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는다. 두려움에는 괴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구절 보기 ▾
23. 그러므로 사랑이 온전해지면 두려움을 내쫓는다. 같은 곳. 그런 두려움은 하나님이 계시므로 악을 겪으리라는 생각에서 오는 공포이며,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선하신 분으로 바라보는 사랑에 대립한다.
24. 둘째로 하나님을 멀리하는 태도가 사랑에 대립한다. 이를 혐오에서 오는 미움이라고도 한다. 시 14:3, 요 3:20. 그들은 모두 바른길에서 벗어났다. 그는 빛을 미워한다. 사랑이 연합을 바라는 데 있다면 이 태도는 떨어지려는 데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가장 크게 대립하는 것은 적대에서 오는 미움이다. 요 13:23–25〔원문 표기. 인용은 15:24〕.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모두 미워했다. 사랑에는 선의가 있지만, 하나님께 적대하는 불경건한 사람은 가능하다면 그분이 존재하지 않기를, 적어도 지금과 같은 분이 아니기를 바란다.
구절 보기 ▾
25. 하나님을 그분 자신이 어떠하신 대로 이해하면 그분은 미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죄인에게 보응하시는 분으로 이해할 때 죄인들이 그분을 미워하는 일이 흔하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은 그들과 가장 크게 대립하신다. 요 3:20. 악을 행하는 자는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오지 않는다. 자기 행위가 드러날까 하기 때문이다. 경건한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분께 어긋나는 불경건을 미워하고, 불경건한 이는 불의를 사랑하기에 자신의 불의에 반대하시는 하나님을 미워한다.
구절 보기 ▾
26. 이토록 불경건해지는 데는 단계가 있다. 첫째. 죄인은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한다. 둘째. 하나님의 율법에 어긋나도 자기에게 좋은 것을 원한다. 셋째. 자기 욕망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율법을 미워한다. 넷째. 그 율법을 제정하여 주신 하나님 자신을 미워한다.
27. 세상을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대립한다. 요일 2:15. 세상이 하나님과 그 뜻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장 제16절.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없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절 보기 ▾
28. 사랑은 마음이 하나님 안에서 쉴 때 온전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어긋나는 것에서 마음이 쉬는 것은 사랑에 대립할 수밖에 없다.
29. 어떤 덕이 다른 덕의 행위를 명하거나 질서 짓는다고 해서 그 덕의 형식이 되지는 않는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 본성상 하나님을 직접 향하지 않는 행위도 사랑으로 하나님께 향하고188 그분 안에서 완전해진다. 그러므로 비유적으로 사랑을 그런 행위와 그것을 낳는 덕의 형식이라 부를 수 있다.
30. 사랑은 믿음의 내적 형식이 될 수 없다. 그 본성상 결과가 원인에 뒤따르듯 믿음에 뒤따르며, 원인이 결과에 앞서듯 믿음에 앞서지 않기 때문이다.
31. 또한 믿음이 사랑에 의해 외부에서 하나님을 향하도록 이끌리는 것도 아니다. 믿음은 그 고유한 내적 본성상 하나님을 대상으로 삼는다.
32. 믿음으로 받는 칭의는 로마 가톨릭 교도들의 주장과 달리 사랑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믿음의 고유한 대상에 의존한다.
33. 믿음이 사랑으로 역사한다고 하는 것은(갈 5:6) 믿음의 모든 효력이 사랑을 원인으로 삼기 때문이 아니다. 믿음이 사랑을 일으킴으로써 그 효력을 드러내고 발휘하기 때문이다.
구절 보기 ▾
34. 여기서 ‘~으로’는 형식적 원인을 나타내지 않고 도구적 원인과 같은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다고 할 때와 같다.
35. 행위가 없는 믿음을 죽었다고 하는 것은(약 2:26) 믿음의 생명이 행위에서 나오기 때문이 아니다. 행위는 믿음의 생명에서 나오는 후속 행위이기 때문이다.
구절 보기 ▾
36. 믿음이 행위로 완전해진다고 하는 것은(약 2:22) 결과가 원인으로 인해 본질적으로 완전해지는 것과는 다르다. 원인이 결과를 낳아 실제로 완결되는 것처럼 믿음의 작용이 완결된다는 뜻이다.189
구절 보기 ▾
37. 사랑의 대상은 하나님의 선하심 자체이며, 믿음과 소망은 우리가 붙들도록 제시되신 하나님을 바라본다. 그러므로 약한 신자에게서도 사랑으로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는 모습은 믿음이나 소망의 구체적 행위보다 더 뚜렷하고 한결같이 드러난다. 하나님의 선하심 자체가 그것을 붙드는 길보다 더 분명하며, 그 길은 이 생에서 희미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각주

188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그 행위들을 하나님께 돌린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 사랑의 대상이시다. ↩
189
못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생긴다. 본질적 원인은 돌을 던지는 것이고, 이를 완결하는 원인은 물결을 일으키는 물의 성질이다. 흙에 돌을 던지면 같은 결과가 생기지 않는다. 돌을 던지는 행위는 물결이 일기 시작할 때 완결된다. ↩
◀ 제6장 소망49 / 64제8장 말씀의 청종 ▶
홈|사이트 소개|고전 성경의 유산|복음의 길|옛신앙|맥체인 성경읽기|믿음 체크북|문의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