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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정수 - 윌리엄 에임스(16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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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말씀의 청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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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덕인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서 두 가지 신앙 행위가 나온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영적 교통에 관계되는 말씀의 청종과 기도이다.
2. 이 구분의 근거는 하나님께 마땅한 영예를 돌려 예배한다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앞에 내놓으신 것을 받아들이거나 그분의 완전함에 합당하게 받으실 것을 드릴 때, 우리는 두 경우 모두 직접 하나님께 영예를 돌린다.
3. 그러므로 첫째 신앙 행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에 관한 것이며, 둘째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관한 것이다.
4. 말씀의 청종은 하나님의 뜻을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5. 따라서 여기서 ‘들음’은 설교나 읽기나 다른 방식으로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모든 일을 뜻한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정하신 말씀의 설교와 들음을 통해 특별히 역사하시므로 이 말을 쓴다.
6. 그러므로 이 말을 좁게 해석하여 귀로 듣는 일을 으뜸으로 삼거나 언제나 필수로 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모든 일을 가리키되, 주로 내적으로 받아들이고 복종하는 일을 뜻한다.
7. 말씀을 받아들이는 일에는 두 부분이 있다. 마음을 기울이는 주의와 의지를 기울이는 결심이다.
8. 주의란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지성을 기울이는 일이다. 행 16:14. 주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여셔서 바울이 말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셨다. 성경, 특히 구약은 이를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거나 하나님 자신을 찾는다고 자주 표현한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갈망은 우리에게 결코 없어서는 안 될 것을 찾아내려는 갈망과 같아야 한다. 사 58:2. 그들은 날마다 나를 찾고 내 길을 알기를 기뻐한다. 의를 행하고 자기 하나님의 법도를 버리지 않는 민족처럼 내게 의로운 규례를 묻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를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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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렇게 주의를 기울일 때에는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가려낼 분별이 필요하다. 롬 12:2.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 그 뜻을 깨달은 뒤에는 그것이 선한지, 지켜야 하는지 더 따져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뜻 자체가 모든 신앙적 탐구가 이르는 마지막 기준이기 때문이다. 갈 1:15–16.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내 안에 나타내기를 기뻐하셨을 때, 나는 혈육과 의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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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결심은 이미 깨달은 하나님의 뜻을 신앙으로 준행하도록 우리 의지를 기울이는 일이다. 시 119:106. 주의 의로운 법도를 지키기로 맹세했으니 그대로 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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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결심이 굳고 확고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명하시든 예외 없이 준행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렘 42:5–6.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 우리에게 전하시는 모든 것을 우리가 그대로 행하지 않으면, 여호와께서 우리 사이에 참되고 신실한 증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좋든 나쁘든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에 순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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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 결심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 자체가 믿는 자의 마음에 있다고 한다. 시 40:9 [개정본에는 시 40:8 표기], 119:11, 렘 31:33, 히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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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바르게 들으려면 신앙으로 준행하는 데서 들어야 하며, 마음의 내적 행위와 성향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켜야 한다. 롬 6:17. 너희는 너희에게 전해진 교리의 본을 마음으로부터 순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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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말씀을 듣는 것이 참된 신앙 행위가 되려면, 첫째. 믿음에서 나와야 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계시하시는 것이 진리의 말씀임을 믿으며, 그에 합당한 마음으로 말씀을 대한다. 히 4:2. 들은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들 안에서 믿음과 결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눅 24:32.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 마음이 뜨겁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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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이 믿음으로 우리는 말씀을 붙든다. 시 119:31. 말씀 자체도 우리에게 붙어 우리 안에 심겨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한다. 약 1:21. 심긴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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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둘째. 말씀을 듣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으로 생명을 얻기를 기다리는 소망에서 나와야 한다. 신 32:47, 요 5:39. 그것은 너희의 생명이다. 너희는 성경에서 영생을 얻으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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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이 소망으로 믿는 자들은 인내하며 열매를 맺는다. 눅 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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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셋째. 사랑이 함께해야 한다. 이 사랑으로 우리는 말씀을 붙들며, 그 말씀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선하신 분으로 여기고 그분께 붙는다. 시 119:97. 제가 주의 율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요! 살전 2:10〔원문 표기. 인용은 살후 2:10〕. 그들은 구원에 이르게 할 진리에 대한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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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이 사랑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자들 안에 풍성히 거하고(골 3:16), 그들은 말씀의 본을 따라 변화된다(롬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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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참되고 합당한 예배이다. 첫째. 하나님께 직접 영적 영예를 돌리기 때문이다. 듣는 행위의 직접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데 있지만, 그렇게 받아들일 때 우리의 양심을 하나님께 복종시킨다. 이로써 하나님의 권능과 참되심을 인정하여 그분께 영예를 돌리고 예배한다. 둘째.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직접 실천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예배는 본질적으로 이 세 가지에 있다.
21. 그러므로 사람의 말이나 주장을 하나님의 말씀에 섞어 같은 방식으로 제시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어느 정도 하나님 대신 사람을 예배하는 일이 될 수 있다.
22. 이 들음에 가장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것은 자신의 탁월함을 내세워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려 하지 않는 교만이다. 교만은 신앙의 겸손과 순종 일반에 어긋나지만, 이 신앙 행위에서 특히 그러하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이의 뜻을 법으로 받아 복종하기는커녕 자기 뜻을 법으로 삼으려 한다. 렘 13:15. 듣고 귀를 기울이라. 교만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렘 5:5. 그들은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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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교만에 고유한 행위는 멸시이다.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뜻을 업신여기고 그 뜻을 준행하는 일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삼하 12:9.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분이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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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그러므로 교만을 다른 모든 죄의 원인이라 하는 데에는 두 이유가 있다. 첫째. 다른 모든 죄는 어느 정도 교만에서 드러나는 자기 우월함을 목적으로 삼는다. 둘째. 교만은 말씀의 다스림을 멸시하여 내던진다. 오직 말씀의 힘으로 죄를 피할 수 있다.
25. 그러므로 모든 죄에는 어느 정도 교만이 있으며, 특히 숙고하고도 저지르는 죄에서 그러하다.
26. 그러므로 신앙에 관한 일을 세상이나 육체나 육체의 지혜와 의논하는 것도 말씀을 듣는 일에 대립한다. 롬 8:7, 갈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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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사람은 교만으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를 거부한다. 그와 같이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것들과 의논함으로써, 말하자면 자신이 복종할 다른 신들을 찾는다.
28.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가장 저주받을 만큼 대립하는 것은 마귀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일이다. 사 8:19, 신 18:11–15. 이때 하나님께만 마땅히 드릴 신앙의 믿음과 소망이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으로 하나님의 원수들에게 옮겨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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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그러므로 그런 술법을 가르치는 이들은 조언을 구하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믿음190을 요구하곤 한다.
30. 이 믿음으로 마귀와 어떤 언약을 맺으며, 거기에는 신앙의 성격을 띤 행위가 따른다. 공개적으로 명시하여 맺지 않더라도 은밀하고 암묵적으로 맺는다.
31. 마귀에게 직접 조언을 구할 뜻이 없더라도, 그 행위 자체나 관습상 그 행위를 하는 방식이 마귀를 불러 도움이나 조언을 받는 것이라면 같은 죄에 참여한다.
32. 그러므로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마귀의 충동191으로 들여온 모든 술법을 정죄해야 한다.
33. 그러므로 하나님의 확실한 계시나 하나님께서 피조물에 정하신 자연의 질서에 근거하지 않는 모든 점술을 정죄해야 한다.
34. 사물이나 말을 예언이나 어떤 작용에 사용하는데, 그 사물이나 말에 본성상 또는 하나님의 규례에 따라 그런 기능이 없다면, 그런 사용을 모두 정죄해야 한다.
35. 그런 방식으로 마귀의 도움을 구하는 데에는 마귀를 부르는 일이 들어 있으므로, 이는 하나님을 부르는 일에 대립한다. 또 마귀에게서 계시를 기대하거나, 그 명령을 받아 실행하도록 마음을 복종시킨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대립한다.
36. 그러므로 마귀와의 이런 교통은 속임과 미혹을 동반하기 때문에만 그릇된 것이 아니다. 그 자체가 참된 신앙에 어긋난다.
37. 우리는 마귀와 시민적 교통이나 교제를 나누지 않으며, 신앙의 교통도 나눌 수 없다. 옛날 어떤 이들이 선한 천사들과 누렸던 것과 같은 교통도 마귀와는 불가능하다. 선한 천사들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섬기는 영들이다.
38. 그러므로 우리 영혼의 원수인 마귀를 대적하는 것 외에 그와 함께하는 일은 무엇이든 참된 신앙을 훼손하며 그릇된 신앙에 속한다.
39. 마귀가 때로 주문의 힘으로 사람의 명령에 복종하는 듯 보이더라도, 이는 사람을 더 쉽게 다스리기 위해 복종하는 체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겉모습은 사람이 그러한 교통에서 마귀에게 드리는 신앙의 복종을 막지 않고 가려 줄 뿐이다.
40. 효력이 없는 말이나 형상 따위로 남의 병을 고치려는 사람과, 그런 목적으로 자신이나 남에게 그러한 일을 하도록 허용하는 사람은 모두 어느 정도 같은 죄에 참여한다.
41. 어떤 것들에 있는 서로 끌거나 물리치는 성질192과 고유한 효력은 그런 주문과 다르다. 앞의 효력은 사람들의 공통된 경험으로 알려져 별도의 믿음을 요구하지 않지만, 주문은 어느 정도 믿음을 요구한다.
42. 많은 경우 강한 상상이 그런 방편의 효과에 한몫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상상도 흔히 어떤 신앙적 믿음에서 나온다. 또한 마귀의 작용이 따르지 않으면 부모의 상상이 자녀에게, 사람의 상상이 가축에게 효력을 낼 수는 없다.
43. 말씀을 듣는 데 가장 힘쓰는 이들은 그런 술법에 가장 적게 관심을 기울이며, 거기서 얻는 열매도 가장 적다.

각주

190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자리를 차지한 다른 존재에게 두는 그릇된 믿음이다. ↩
191
성경이나 이성에 근거하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할지 직감하거나 느끼는 것이다. 제33항을 보라. ↩
192
서로 끌리는 것들은 본성에서 서로 맞으며, 서로 물리치는 것들은 본성에서 서로 맞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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