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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정수 - 윌리엄 에임스(16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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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제비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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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비뽑기는 순전히 우연에 맡겨진 결과를 정해 어떤 논쟁을 판정해 달라고 하나님께 증언을 구하는 일이다. 잠 16:33. 제비는 옷자락에 던지지만 그 모든 결정은 여호와께 달려 있다. 잠 11:18〔원문 표기. 인용은 18:18〕. 제비는 다툼을 그치게 하며 힘 있는 자들 사이를 판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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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를 간구라고 하는 것은 제비뽑기가 그 목적을 이루는 일을 오직 하나님께 기대하는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섭리에 직접 관계된다.
3. 제비뽑기를 우연성으로 정의하는 것은 그 공통된 본질을 작용 원인이 우연히 작용하는 방식에서 찾는 이들의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4. 제비뽑기와 전혀 다른 우발적 원인이 많다. 석탄을 캐려고 땅을 파다가 금을 발견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또 우연이 작용 원인이 아닌 제비뽑기도 많다. 새가 나는 방식이나, 그 자체의 힘으로 작용하는 원인에서 생기는 이와 비슷한 결과에 따르는 제비뽑기가 그러하다.
5. 주사위를 던지거나 제비뽑기가 의존하는 비슷한 결과를 내는 일이 언제나 행위자213의 의도나 목적을 벗어난다고 논리적으로 주장할 수 없다. 그러나 우발적인 사건이라면 반드시 의도나 목적을 벗어나야 한다.
6. 제비뽑기의 본질은 단순히 우연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순전한 우연성에 있다. 우연히 일어나는 일에는 세 단계가 있다. 자주 일어나는 일과 드물게 일어나는 일, 그리고 우리가 이해하는 한 양쪽 가능성이 같은 일이 있다. 다른 우연적 사건은 기술로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지만, 순전히 우연적인 사건은 그렇지 않다.
7. 그러므로 제비를 지배한다고 하는 것은 작용 원인이 우발적으로 작용하는 방식이 아니다. 불경건한 이들이 여신으로 만들어 하늘에 둔 눈먼 운명이거나, 우리에게 감추어진 방식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이다.
8. 모든 제비뽑기는 어떤 문제나 논쟁을 해결하려는 것이며, 그 자체로나 우리에게나 어느 쪽으로도 정해지지 않은 순전한 우연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실제 의도가 무엇이든, 그 일의 본성상 그 결정을 이런 우연적 사건을 확실한 뜻으로 이끄실 수 있는 더 높은 권능에 구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제비를 쓰는 것은 실제로 언제나 참 하나님께 호소하거나, 많은 이들이 운명이라 부르는 가공의 권세에 호소하는 일이다.
9. 우리 신학자들이 모든 제비에 하나님의 비상한 섭리가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제비를 쓰는 자들이 언제나 그런 섭리를 직접 분명히 바라보거나 하나님께서 언제나 그런 섭리를 행사하신다는 뜻이 아니다. 제비 자체가 본성상 순전히 우연적인 결과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하고 비상한 섭리와 관계된다는 뜻이다. 이 뜻에서 그들의 견해는 옳다.
10. 모두의 공통된 동의에 따라 제비에서 어떤 판정을 기대한다. 우연적 사건에는 판정할 힘이 없고, 하나님의 확실한 섭리 외에는 판정하는 운명도 없다. 그러므로 이 판정을 특별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섭리에서 기대할 수밖에 없다.
11. 순전한 우연성 자체는 문제를 판정하는 주된 원인이 될 수 없다. 결과가 순전히 우연에 맡겨진 사람도 그 결과를 목적에 맞게 이끌 수 없다. 그러므로 그러한 인도를 더 높은 이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다.
12. 또한 사람의 탐구는 이런 순서를 따른다. 문제를 판정하고 싶어도 확실한 방편이 자기 손에 없으면 더 높은 권세에 그것을 구한다. 제비뽑기의 성격은 이러한 절차와 잘 맞는다.
13. 숙고하여 일정한 목적을 세우고 이치에 따라 행하는 사람이 자신의 행위를 운명이나 순전한 우연 자체에 맡긴다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지식 없이 숙고하는 셈이고, 어느 쪽으로도 정해지지 않은 것이 정해진 결과를 내는 방편이 된다.
14. 이처럼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바라며 의지하는 일을 잠 16:33이 분명히 가르친다. 제비에 관한 사람의 행위는 순전한 우연의 범위에 머문다. 제비는 옷자락에 던진다. 반면 그 판정 전체는 하나님께 돌린다. 그 모든 결정은 여호와께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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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성경은 다른 모든 일도 하나님의 섭리에 돌린다. 다만 특별히 그 섭리와 관련된 일이 아니면 이처럼 뚜렷이 구분하여 그분의 섭리에 돌리지 않는다.
16. 히브리어 미쉬파트가 때로 ‘판정’ 이외의 것을 뜻한다는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언제나 다루는 내용에 맞게 뜻을 이해해야 하며, 제비의 본질을 설명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비에 판정의 성격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17. 그러므로 제비를 경솔히 쓰거나 장난과 가벼운 일에 써서는 안 된다. 헛된 논쟁이나 다른 통상적인 방편으로 적절히 판정할 수 있는 논쟁에도 써서는 안 된다.
18. 그러므로 특별한 계시 없이 제비를 점치는 데 쓰거나, 권리의 옳고 그름을 판정하거나, 이미 일어난 일을 알아내는 데 통상적으로 써서는 안 된다. 몫을 나누거나 어느 쪽을 택해도 합당한 선택에서, 다른 방법으로는 관계자들이 받아들일 만큼 알맞게 정할 수 없을 때 사용한다.
19. 놀이에 제비를 써도 된다는 견해는 한 가지 이유로 충분히 반박된다. 모두가 인정하듯 제비는 본성상 하나님의 섭리에 특별한 방식으로 판단을 구하기에 알맞다. 동일한 행위가 그 본성상 그토록 거룩한 쓰임에 특별히 알맞으면서 동시에 농담이나 놀이에 쓰일 수는 없다.
20. 덜 중대한 시민적 분쟁에 제비를 합당하게 쓸 수 있으므로 가벼운 놀이나 장난에도 쓸 수 있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제비를 쓰는 시민적 분쟁은 그 자체로 크지 않더라도 수반되는 결과가 그 일을 매우 중대하게 만든다. 놀이에서의 다툼은 그렇지 않다.
21. 가축의 십일조(레 27:32)와 제사장 및 레위인의 봉사 순서(대상 26:13–14 이하, 눅 1:9)는 하나님의 판정으로 정하지 않았다면 큰 어려움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제비로 정하도록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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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제비가 가장 가벼운 일에 가장 잘 어울린다는 결론은 제비의 본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먼저 통상적인 방편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이 닿는 데까지 애쓰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특별한 결정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렇게 힘쓴다고 해서 논쟁 자체의 중대함이나 제비에 맡기는 판정의 중대함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23. 제비는 맹세와 마찬가지로 그 본성이 거룩하므로 특별한 제정으로 따로 거룩하게 할 필요가 없다. 제비의 소재라 할 수 있는 우연성은 떡이나 포도주처럼 본성상 거룩하지 않다. 그러나 그 쓰임에 적용되면 맹세의 말이나 성례의 요소처럼 거룩한 성격을 띤다.
24. 그리스도인은 피조물을 본래 알맞거나 알맞게 된 목적에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그러나 순전한 우연성은 그 자체로 어떤 문제를 판정하기에 알맞지 않으며, 그 목적으로 쓰는 사람들의 동의로 알맞아지지도 않는다.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께 의존한다고 인정하는 비상한 제비에도 같은 방식으로 동의가 있으나, 그 동의가 제비에 무엇을 더하지는 않는다.
25. 제비가 그 자체로 선악이 정해지지 않은 일이라고 하려면 먼저 거기에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특별한 호소가 없음을 증명해야 한다.
26. 놀이에 쓰이는 소재는 특정한 종류의 행위로 한정되지 않더라도, 하나님과의 교통에 특별히 속하는 일은 놀이에 쓸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27. 제비를 되풀이하면 결과가 달라진다는 반론은 헛되다. 제비를 정당하게 되풀이할 수 있는 경우 그런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낮으며, 하나님의 섭리에 호소할 때마다 그분께서 특별히 역사하셔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성경에는 때에 맞지 않게 하나님을 시험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때로 평상시의 질서를 벗어나 서로 다른 대답을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민 22:12, 20. 그들과 함께 가지 말라.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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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하나님께서 우리의 뜻대로 비상한 섭리를 행하시도록 강제할 수 없다는 반론은 더욱 헛되다. 하나님을 강제할 수 없어도 우리가 원할 때 그분의 비상한 섭리에 호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29. 그러므로 주사위 놀이는 정황이나 우발적 결과 때문만이 아니라 그 자체의 내적 본성에서 신앙에 어긋난다.
30. 주사위 놀이에는 순전한 우연성에 근거한 놀이도 포함된다. 그 뒤에 기지나 노력이나 기술로 진행하는 판놀이와 카드놀이도 그러하다.
31. 그러나 기술에 근거하면서 진행 중에 우연214의 영향을 일부 받는 놀이는 주사위 놀이와 크게 다르다.
32. 사람들이 다른 놀이보다 주사위 놀이에서 경솔하게 맹세하고 저주하며 신성모독을 하기 쉬운 것은 일부 놀이 자체의 본성에서 비롯된다. 제비를 여러 번 되풀이하여 기대가 자주 빗나가면, 제비를 다스린다고 상상하는 힘이 자신을 대적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33. 같은 이유로 그런 놀이를 하는 사람들은 좀처럼 끝내거나 한도를 정하지 못한다. 지고 있는 사람들도 다음 제비에서 이길 소망을 버릴 이유가 없으므로 바라던 결과를 완고하게215 기다리며 계속한다.
34. 그러므로 다른 놀이에서는 외부에서 생겨 그 놀이를 악하게 만드는 손실과 어려움이, 주사위 놀이에서는 일부 놀이 자체의 본성에서 나온다.

각주

213
행위자는 주사위를 던지는 사람이다. ↩
214
우연이나 위험을 뜻한다. ↩
215
완고하고 고집스럽게 매달린다는 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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