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여기서 정의는 타인에게 마땅히 해야 할 모든 의무를 포괄하는 가장 넓은 뜻으로 쓰이지 않는다. 그런 뜻이라면 신앙 자체도 포함한다. 앞서 정의가 덕의 일반 속성 가운데 으뜸이라고 설명했듯, 일반적 정의는 덕 일반이다. 반대로 마땅히 받거나 실제로 받은 양을 따지는 가장 좁은 뜻도 아니다. 그런 뜻이라면 받은 만큼 돌려주는 몇 가지 의무만 포함한다. 여기서는 같은 권리로 맺어진 이들 사이의 상호 의무라는 중간 뜻으로 쓴다. 이런 뜻에서 둘째 돌판 전체를 아우른다.
3. 정의의 대상은 이웃이다. 사람이나 천사로서 우리와 같은 목적과 복을 누리거나 누릴 수 있는 모든 이가 이웃이다. 눅 10:36–37.
4. 그러므로 아무리 거룩한 사람이나 천사라도 첫째 돌판에서 명하는 신앙이나 신앙의 예배에 합당한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들은 둘째 돌판이 다루는 정의, 곧 이웃에게 마땅히 행할 의무의 대상이다. 이런 본질상의 이유로 피조물에 대한 모든 경배가 배제된다. 행 10:26. 일어나십시오. 나도 사람입니다. 계 22:9. 그러지 말라. 나도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이 책의 말씀을 지키는 이들과 함께 종 된 자이다. 하나님께 경배하라.
9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5. 이웃이라는 이름과 범위에는 각 사람 자신도 그에 상응하게 포함된다. 사람은 다른 이의 이웃이기 전에 자신의 이웃이다. 그래서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따로 명하는 계명이 없다. 하나님과 이웃을 바르게 대하면 자신도 바르게 대하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의무를 행하기에 알맞은 성향은 자신의 온전함234에 속하며, 이웃에게 행하는 것과 같은 의무는 자신에게도 행해야 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의무는 자신에게 행하지 않는다.
6. 이웃에게 의무를 행하는 방식은 그의 유익을 생각하고 바라는 것이므로, 같은 덕을 이웃을 향한 사랑이라 한다. 마 22:29〔원문 표기. 해당 계명은 22:39〕, 막 12:31.235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
마가복음 12:31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7. 이 사랑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마찬가지로 연합을 바라는 사랑과 기뻐하는 사랑과 선의가 언제나 있다. 여기에 이웃의 비참함을 돌보는 긍휼이 더해지기도 한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는 그런 긍휼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8. 이 정의의 의무와 사랑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서 나와야 한다. 신앙은 하나님께 가장 큰 영예를 돌리므로, 피조물에 직접 관계되는 일에서도 그분의 뜻에 순종하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마땅히 할 의무를 소홀히 하는 이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멸시한다고 한다. 삼상 2:30. 신앙에 담긴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의 형상에 어느 정도 참여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한다. 그래서 사람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안에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한다. ‘주 안에서 사랑받는 자’라는 표현의 한 이유가 이것이다.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사도행전 5:29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10. 그러므로 이웃을 향한 정의와 사랑을 소홀히 하면서 참된 신앙을 지닐 수 없다. 약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순수하고 더러움 없는 예배는 고난을 당하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이다. 요일 4:20–21.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하라는 계명을 하나님께 받았다.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요한일서 4:20-21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11. 그러므로 성경에서 흔히 하듯 신앙은 정의로 가장 잘 시험하고 검증한다. 다만 정의의 외적 행위와 의무를 말한다면, 이 근거는 참된 신앙이 있음을 확인하기보다 없음을 판별하는 데 더 확실하다. 참된 신앙이 없어도 그런 행위가 있을 수 있으나, 참된 신앙이 있다면 그런 행위가 전혀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12. 같은 이유로 불의한 행위는 사람이 불경건하다는 것을, 정의로운 행위가 그가 경건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보다 더 뚜렷이 보여 준다. 그래서 육체의 일은 명백하다고 한다. 갈 5:19.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같은 장 제12절〔원문 표기. 성령의 열매는 제22절 이하〕.
13. 이 사랑의 순서는 이러하다. 하나님을 먼저 가장 크게 사랑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웃 사랑을 규정하는 근거이시다. 하나님 다음으로는 참된 복을 바라보는 사랑으로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과 연합하기를 바라며 그분을 사랑할 때, 우리의 영적 복을 바라보는 가장 큰 사랑으로 곧바로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우리와 같은 선을 함께 누리기를 바라는 다른 이들은 그다음으로 사랑해야 한다. 또한 다른 이들은 우리의 잘못 없이도 그 복을 잃을 수 있으나, 우리는 자신의 잘못 없이 그 복을 잃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 복을 남보다 자신을 위해 바라며 구할 의무가 더 크다.
14. 그러므로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남을 사랑하는 규범과 척도가 된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15. 그러므로 자기의 잘못이 작아 보이고 남을 위해 구하는 것이 큰 선이어도, 남을 위해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 알고도 자원하여 죄를 짓는 이는 자기 영혼을 미워하기 때문이다. 잠 8:36, 29:24. 내게 죄를 짓는 자는 자기 영혼을 해친다. 도둑과 한패가 된 자는 자신을 미워하며, 저주를 듣고도 알리지 않는다.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
20. 사랑할 이들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나 우리와의 관계에서 뚜렷한 차이가 없다면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
21. 그러나 하나님이나 우리와 가까운 정도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면, 어떤 면에서든 더 가까운 이를 더 사랑해야 한다. 모든 이에게 같은 사랑의 행위를 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특별한 친밀함이나 교통으로 우리에게 맡기신 이를 더 돌볼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모두의 구원을 똑같이 바라더라도, 그 바람을 실천하고 돌보는 일은 특별히 가까이 맺어진 이들에게 먼저 해야 한다. 군인이 모든 전우의 유익을 바라되 같은 부대와 같은 대열에서 곁에 있는 이를 가장 돌봐야 하는 것과 같다. 바울도 다른 민족보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회심을 더 뜨겁게 바랐다. 그들이 육신으로 자기 형제요 친족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롬 9:3.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
22. 사랑의 이 우선순위에서는 가까운 이들을 위하여 그 관계에 속하는 선을 특별히 바라야 한다. 영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는 영적 선을, 본성의 관계로 가까운 이들에게는 그 관계에 맞는 선을 바란다. 우리의 바람에서 두 종류의 선을 갈라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바로 그 관계로 하나님께서 손짓하시듯 이 일이나 저 일에 먼저 힘쓰게 하신다는 뜻이다.
23. 그러므로 첫째. 다른 조건이 같다면 이생의 좋은 것에 관하여 낯선 이보다 혈족을 더 사랑해야 한다. 혈족 가운데서도 가장 가까운 이를 가장 사랑해야 한다.
24.둘째. 적어도 이생의 일상 의무에서는 특별히 가까운 친구를 일반적인 혈족보다 더 사랑해야 한다. 우정이 혈연 자체보다 더 가까운 관계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잠 18:24. 형제보다 가까운 친구가 있다.
25.셋째. 부모는 어떤 친구보다 더 사랑해야 한다. 우리에게 가장 내밀한 것을 나누는 면에서 부모가 친구보다 가깝기 때문이다. 딤전 5:4.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녀가 있으면, 먼저 자기 집에서 경건을 행하고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받아들여질 만하다.
29.일곱째. 공동체 전체는 그 어느 한 구성원보다 더 사랑해야 한다. 부분과 전체의 관계가 두 부분 사이의 관계보다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명과 안전이 공동의 유익에 필요하거나 가장 이로운 통치자는 일반 백성 한 사람이나 여러 사람보다 더 사랑해야 하며, 이생의 일에서는 우리 자신보다도 더 사랑해야 한다. 삼하 21:17. 다시는 저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십시오. 이스라엘의 등불을 끄지 않으셔야 합니다. 애 4:20.
36. 이 행위는 기도와 구별된다. 기도도 이웃의 유익을 위하여 힘쓰는 일이지만, 직접 이웃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 향하기 때문이다.
37. 다만 이웃을 위하여 다른 피조물을 대상으로 하는 노력도 이 행위에 포함된다. 그 행위가 이웃 자신에게 직접 행할 때와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38. 이 노력은 말과 본으로 설득하거나 실제로 유익을 이루는 일이다.
39. 설득하는 노력은 행해야 할 선을 보여 주고 그것을 행하도록 마음을 움직일 근거를 제시하는 데 있다.
40. 이는 권면과 좋은 본보기로 이루어진다.
41. 여기서 권면은 말로 주는 모든 일깨움을 넓게 뜻한다. 이웃에게 유익을 마련하고 베풀거나, 해를 막고 바로잡는 데 쓰인다.
42. 그러므로 가르치고 권면하는 의무(골 3:16), 서로 살펴 사랑과 선행을 북돋우는 의무(히 10:24), 날마다 격려하는 의무(히 3:13), 슬픔과 근심 가운데 위로하는 의무(살전 4:18), 잘못에 빠진 이를 형제로서 바로잡는 의무(갈 6:1, 계 19:17 [개정본에는 이 참조 없음])가 여기에 속한다.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48. 걸림돌은 악한 행위를 보여 주어 남을 죄로 부추기거나 선을 행하지 못하게 하거나 그 의욕을 꺾는 것이다. 전자는 넘어지게 하는 원인이고 후자는 약하게 하는 원인이다. 이런 것을 엄밀히 걸림돌이라 부른다. 고전 8:9–10. 너희의 자유가 약한 이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롬 14:21. 네 형제가 넘어지거나 걸려들거나 약해지게 하는 일.
13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51. 그 자체로 선악이 정해지지 않은 일은 모든 정황을 고려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을 세우는 데 이바지하면 유익하고, 그렇지 않으면 유익하지 않다고 한다.
52. 어떤 사람의 권위도 이웃에게 걸림돌을 놓는 행위를 합당하게 만들 수 없다.
53. 명백한 죄를 짓거나 적어도 죄처럼 뚜렷이 보이는 일을 하여 남에게 알려질 때, 또는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아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일을 경솔히 하여 남에게 영적 해를 끼칠 때 걸림돌을 놓았다고 한다. 그 행위로 이웃을 그릇된 길로 이끌거나 괴롭히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더욱 그러하다.
54. 그러나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다른 이의 악의 때문에 그가 걸려 넘어진다면, 이는 스스로 걸려 넘어진 일이라 한다. 바리새인들의 경우처럼 그것은 우리의 죄가 아니라 걸려 넘어진 이들의 죄이다. 마 15:12–14. 바리새인들이 그 말씀에 걸려 넘어진 것을 아십니까? 그들을 내버려 두라. 그들은 눈먼 사람을 이끄는 눈먼 인도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