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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정수 - 윌리엄 에임스(16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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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이웃을 향한 정의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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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신앙을 다루었다. 이제 둘째 돌판에 담긴 정의를 살핀다.
1. 정의는 이웃에게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행하도록 마음을 기울이는 덕이다. 부모에 대한 자녀의 의무가 옳다고 하며(엡 6:1), 종에 대한 주인의 의무도 바르고 공평하다고 한다(골 4:1). 이웃에게 마땅히 해야 할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이 의롭게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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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기서 정의는 타인에게 마땅히 해야 할 모든 의무를 포괄하는 가장 넓은 뜻으로 쓰이지 않는다. 그런 뜻이라면 신앙 자체도 포함한다. 앞서 정의가 덕의 일반 속성 가운데 으뜸이라고 설명했듯, 일반적 정의는 덕 일반이다. 반대로 마땅히 받거나 실제로 받은 양을 따지는 가장 좁은 뜻도 아니다. 그런 뜻이라면 받은 만큼 돌려주는 몇 가지 의무만 포함한다. 여기서는 같은 권리로 맺어진 이들 사이의 상호 의무라는 중간 뜻으로 쓴다. 이런 뜻에서 둘째 돌판 전체를 아우른다.
3. 정의의 대상은 이웃이다. 사람이나 천사로서 우리와 같은 목적과 복을 누리거나 누릴 수 있는 모든 이가 이웃이다. 눅 10: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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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러므로 아무리 거룩한 사람이나 천사라도 첫째 돌판에서 명하는 신앙이나 신앙의 예배에 합당한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들은 둘째 돌판이 다루는 정의, 곧 이웃에게 마땅히 행할 의무의 대상이다. 이런 본질상의 이유로 피조물에 대한 모든 경배가 배제된다. 행 10:26. 일어나십시오. 나도 사람입니다. 계 22:9. 그러지 말라. 나도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이 책의 말씀을 지키는 이들과 함께 종 된 자이다. 하나님께 경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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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웃이라는 이름과 범위에는 각 사람 자신도 그에 상응하게 포함된다. 사람은 다른 이의 이웃이기 전에 자신의 이웃이다. 그래서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따로 명하는 계명이 없다. 하나님과 이웃을 바르게 대하면 자신도 바르게 대하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의무를 행하기에 알맞은 성향은 자신의 온전함234에 속하며, 이웃에게 행하는 것과 같은 의무는 자신에게도 행해야 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의무는 자신에게 행하지 않는다.
6. 이웃에게 의무를 행하는 방식은 그의 유익을 생각하고 바라는 것이므로, 같은 덕을 이웃을 향한 사랑이라 한다. 마 22:29〔원문 표기. 해당 계명은 22:39〕, 막 12:3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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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 사랑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마찬가지로 연합을 바라는 사랑과 기뻐하는 사랑과 선의가 언제나 있다. 여기에 이웃의 비참함을 돌보는 긍휼이 더해지기도 한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는 그런 긍휼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8. 이 정의의 의무와 사랑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서 나와야 한다. 신앙은 하나님께 가장 큰 영예를 돌리므로, 피조물에 직접 관계되는 일에서도 그분의 뜻에 순종하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마땅히 할 의무를 소홀히 하는 이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멸시한다고 한다. 삼상 2:30. 신앙에 담긴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의 형상에 어느 정도 참여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한다. 그래서 사람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안에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한다. ‘주 안에서 사랑받는 자’라는 표현의 한 이유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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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러므로 신앙에 어긋나는 일은 사람에게 마땅히 해야 할 의무가 될 수 없다. 행 4:19, 5:29.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보다 여러분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하십시오. 우리는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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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러므로 이웃을 향한 정의와 사랑을 소홀히 하면서 참된 신앙을 지닐 수 없다. 약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순수하고 더러움 없는 예배는 고난을 당하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이다. 요일 4:20–21.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하라는 계명을 하나님께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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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러므로 성경에서 흔히 하듯 신앙은 정의로 가장 잘 시험하고 검증한다. 다만 정의의 외적 행위와 의무를 말한다면, 이 근거는 참된 신앙이 있음을 확인하기보다 없음을 판별하는 데 더 확실하다. 참된 신앙이 없어도 그런 행위가 있을 수 있으나, 참된 신앙이 있다면 그런 행위가 전혀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12. 같은 이유로 불의한 행위는 사람이 불경건하다는 것을, 정의로운 행위가 그가 경건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보다 더 뚜렷이 보여 준다. 그래서 육체의 일은 명백하다고 한다. 갈 5:19.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같은 장 제12절〔원문 표기. 성령의 열매는 제22절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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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이 사랑의 순서는 이러하다. 하나님을 먼저 가장 크게 사랑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웃 사랑을 규정하는 근거이시다. 하나님 다음으로는 참된 복을 바라보는 사랑으로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과 연합하기를 바라며 그분을 사랑할 때, 우리의 영적 복을 바라보는 가장 큰 사랑으로 곧바로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우리와 같은 선을 함께 누리기를 바라는 다른 이들은 그다음으로 사랑해야 한다. 또한 다른 이들은 우리의 잘못 없이도 그 복을 잃을 수 있으나, 우리는 자신의 잘못 없이 그 복을 잃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 복을 남보다 자신을 위해 바라며 구할 의무가 더 크다.
14. 그러므로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남을 사랑하는 규범과 척도가 된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15. 그러므로 자기의 잘못이 작아 보이고 남을 위해 구하는 것이 큰 선이어도, 남을 위해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 알고도 자원하여 죄를 짓는 이는 자기 영혼을 미워하기 때문이다. 잠 8:36, 29:24. 내게 죄를 짓는 자는 자기 영혼을 해친다. 도둑과 한패가 된 자는 자신을 미워하며, 저주를 듣고도 알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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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누구도 우리의 사랑에서 완전히 제외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무엇보다 사랑한다면 원한도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원수까지 사랑하는 일을 막지 못한다. 마 5:39, 롬 12:17, 살전 5:15, 벧전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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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그러나 하나님께 더 가깝고 하나님 안에서 우리에게 더 가까운 사람은 더욱 사랑해야 한다. 갈 6:10. 모든 이에게 선을 행하되 특히 믿음의 가족에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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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믿는 사람은 아직 믿지 않는 사람보다 하나님과 우리에게 영적으로 더 가까우므로 더욱 사랑해야 한다.
19. 다만 이것은 현재의 때와 직접적인 애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은혜와 믿음을 주시면 장차 다른 사람에게 같은 선을 그만큼 또는 더 많이 바랄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한 사도의 마음을 이런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롬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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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사랑할 이들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나 우리와의 관계에서 뚜렷한 차이가 없다면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
21. 그러나 하나님이나 우리와 가까운 정도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면, 어떤 면에서든 더 가까운 이를 더 사랑해야 한다. 모든 이에게 같은 사랑의 행위를 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특별한 친밀함이나 교통으로 우리에게 맡기신 이를 더 돌볼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모두의 구원을 똑같이 바라더라도, 그 바람을 실천하고 돌보는 일은 특별히 가까이 맺어진 이들에게 먼저 해야 한다. 군인이 모든 전우의 유익을 바라되 같은 부대와 같은 대열에서 곁에 있는 이를 가장 돌봐야 하는 것과 같다. 바울도 다른 민족보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회심을 더 뜨겁게 바랐다. 그들이 육신으로 자기 형제요 친족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롬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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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사랑의 이 우선순위에서는 가까운 이들을 위하여 그 관계에 속하는 선을 특별히 바라야 한다. 영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는 영적 선을, 본성의 관계로 가까운 이들에게는 그 관계에 맞는 선을 바란다. 우리의 바람에서 두 종류의 선을 갈라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바로 그 관계로 하나님께서 손짓하시듯 이 일이나 저 일에 먼저 힘쓰게 하신다는 뜻이다.
23. 그러므로 첫째. 다른 조건이 같다면 이생의 좋은 것에 관하여 낯선 이보다 혈족을 더 사랑해야 한다. 혈족 가운데서도 가장 가까운 이를 가장 사랑해야 한다.
24. 둘째. 적어도 이생의 일상 의무에서는 특별히 가까운 친구를 일반적인 혈족보다 더 사랑해야 한다. 우정이 혈연 자체보다 더 가까운 관계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잠 18:24. 형제보다 가까운 친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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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셋째. 부모는 어떤 친구보다 더 사랑해야 한다. 우리에게 가장 내밀한 것을 나누는 면에서 부모가 친구보다 가깝기 때문이다. 딤전 5:4.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녀가 있으면, 먼저 자기 집에서 경건을 행하고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받아들여질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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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넷째. 공경과 존중과 경외와 감사처럼 결과에서 원인으로 돌려야 할 선에서는 자녀보다 부모를 더 사랑해야 한다. 양육과 성장과 돌봄처럼 원인에서 결과로 내려가는 선에서는 부모보다 자녀를 더 사랑해야 한다.
27. 다섯째. 이생을 함께 살며 결합하는 일에서는 부모나 자녀보다 배우자를 더 사랑해야 한다. ‘둘이 한 몸이 된다’고 한 것이 가장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이다. 창 2:24, 마 19:5.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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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여섯째. 우리에게 선을 베푼 사람을 다른 이보다 더 사랑하며, 그중에서도 영적 선을 나누어 준 이를 가장 사랑해야 한다. 갈 6:6.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과 모든 좋은 것을 나누라.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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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일곱째. 공동체 전체는 그 어느 한 구성원보다 더 사랑해야 한다. 부분과 전체의 관계가 두 부분 사이의 관계보다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명과 안전이 공동의 유익에 필요하거나 가장 이로운 통치자는 일반 백성 한 사람이나 여러 사람보다 더 사랑해야 하며, 이생의 일에서는 우리 자신보다도 더 사랑해야 한다. 삼하 21:17. 다시는 저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십시오. 이스라엘의 등불을 끄지 않으셔야 합니다. 애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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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이웃 사랑에는 두 행위가 있다. 이웃의 유익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과 그 유익을 이루는 일이다. 마 5:44.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자에게 선을 행하며, 너희를 해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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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이 기도는 하나님의 영예를 바라보는 면에서 첫째 돌판의 신앙에 속한다. 이웃의 유익을 바라보는 면에서는 둘째 돌판의 정의와 이웃 사랑에 속한다.
32. 신앙이 이웃에게 바라라고 명하는 모든 선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영적인 것이든 몸에 관한 것이든 그러하다.
33. 이 기도에는 간구뿐 아니라 감사도 포함된다. 하나님께서 이웃에게 베푸신 선한 것을 두고 그분을 찬양하는 것이다. 롬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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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이 기도에 대립하는 것은 이웃이 해를 입기를 비는 저주이다. 마 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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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것은 그의 유익을 위하여 힘쓰는 일이다. 그러므로 선행(마 5:44) 또는 행위로 하는 사랑(요일 3:18)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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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이 행위는 기도와 구별된다. 기도도 이웃의 유익을 위하여 힘쓰는 일이지만, 직접 이웃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 향하기 때문이다.
37. 다만 이웃을 위하여 다른 피조물을 대상으로 하는 노력도 이 행위에 포함된다. 그 행위가 이웃 자신에게 직접 행할 때와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38. 이 노력은 말과 본으로 설득하거나 실제로 유익을 이루는 일이다.
39. 설득하는 노력은 행해야 할 선을 보여 주고 그것을 행하도록 마음을 움직일 근거를 제시하는 데 있다.
40. 이는 권면과 좋은 본보기로 이루어진다.
41. 여기서 권면은 말로 주는 모든 일깨움을 넓게 뜻한다. 이웃에게 유익을 마련하고 베풀거나, 해를 막고 바로잡는 데 쓰인다.
42. 그러므로 가르치고 권면하는 의무(골 3:16), 서로 살펴 사랑과 선행을 북돋우는 의무(히 10:24), 날마다 격려하는 의무(히 3:13), 슬픔과 근심 가운데 위로하는 의무(살전 4:18), 잘못에 빠진 이를 형제로서 바로잡는 의무(갈 6:1, 계 19:17 [개정본에는 이 참조 없음])가 여기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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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형제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그 잘못을 저질렀음이 확실할 때, 넘어진 형제가 고쳐지거나 다른 사람이 같은 잘못에 참여하지 않도록 막는 등 열매나 유익을 기대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때와 사람과 정황에 비추어 알맞은 기회가 있을 때 해야 한다.
44. 이 권면에 대립하는 것은 남의 죄에 동의하거나 참여하는 일이다. 엡 5: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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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남의 죄에 참여하는 방식은 아홉 가지이다. 라틴어로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Iussio, consilium, consensus, palpo, recursus,
Participans, nutans, non obstans, non manifestans.
요컨대 죄를 짓도록 조언하거나 죄인을 변호하고 돕는 일, 막을 수 있는데도 내버려 두는 일, 유익하게 말할 수 있는데도 침묵하는 일로 죄에 동의하게 된다. 롬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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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좋은 본보기는 선행을 보여 주어 다른 이들이 그와 같이 행하도록 북돋우는 것이다. 딤전 4:12, 딛 2:4, 7, 마 5:16, 벧전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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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좋은 본보기에 대립하는 것은 걸림돌이다. 고전 10:32–33.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걸림돌이 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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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걸림돌은 악한 행위를 보여 주어 남을 죄로 부추기거나 선을 행하지 못하게 하거나 그 의욕을 꺾는 것이다. 전자는 넘어지게 하는 원인이고 후자는 약하게 하는 원인이다. 이런 것을 엄밀히 걸림돌이라 부른다. 고전 8:9–10. 너희의 자유가 약한 이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롬 14:21. 네 형제가 넘어지거나 걸려들거나 약해지게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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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다른 이들에게 알려진 모든 악행에는 걸림돌이 되는 면이 있다. 마 18:6–8. 누구든지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 네 손이나 발이나 눈이 너를 넘어지게 하면. 네 형제가 네게 죄를 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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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그 자체로 합당한 일도 다른 이들에게 유익하지 않다면 때로 걸림돌이 된다. 고전 8:13. 음식이 내 형제를 넘어지게 한다면, 형제를 넘어지게 하지 않으려고 나는 결코 고기를 먹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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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그 자체로 선악이 정해지지 않은 일은 모든 정황을 고려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을 세우는 데 이바지하면 유익하고, 그렇지 않으면 유익하지 않다고 한다.
52. 어떤 사람의 권위도 이웃에게 걸림돌을 놓는 행위를 합당하게 만들 수 없다.
53. 명백한 죄를 짓거나 적어도 죄처럼 뚜렷이 보이는 일을 하여 남에게 알려질 때, 또는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아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일을 경솔히 하여 남에게 영적 해를 끼칠 때 걸림돌을 놓았다고 한다. 그 행위로 이웃을 그릇된 길로 이끌거나 괴롭히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더욱 그러하다.
54. 그러나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다른 이의 악의 때문에 그가 걸려 넘어진다면, 이는 스스로 걸려 넘어진 일이라 한다. 바리새인들의 경우처럼 그것은 우리의 죄가 아니라 걸려 넘어진 이들의 죄이다. 마 15:12–14. 바리새인들이 그 말씀에 걸려 넘어진 것을 아십니까? 그들을 내버려 두라. 그들은 눈먼 사람을 이끄는 눈먼 인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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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남이 스스로 걸려 넘어지는 일을 우리가 막을 수 없더라도, 우리가 걸림돌을 놓는 일은 피할 수 있고 피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남을 넘어지게 할 수밖에 없도록 하시지 않는다.
56. 자신을 걸려 넘어지게 하거나 스스로 죄 지을 기회를 만든다고 비유적으로 말할 때에도, 그것은 그에 상응하여 걸림돌을 놓는 일에 속한다.
57. 이웃의 유익을 실제로 이루거나 마련하는 것은 이웃의 도움이 끼어들지 않아도 그 자체로 이웃에게 유익한 일을 우리가 행하는 것이다. 히 13:16. 선을 행하고 나누어 주기를237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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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정의의 모든 행위에는 사랑이 함께해야 한다. 다만 어떤 행위에는 정의가 더 빛나고, 어떤 행위에는 사랑이 더 두드러진다.
59. 그러므로 어떤 의무는 좁은 뜻의 정의에, 어떤 의무는 사랑에 속한다고 구분한다. 이 구별과 형식상의 구분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셨다. 눅 11:42. 너희는 정의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을 지나쳐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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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정의의 행위는 남에게 마땅히 갚아야 할 몫과 동등함을 고려하는 행위이다.
61. 사랑의 행위는 우리가 갚아야 할 몫보다 다른 이의 유익을 더 살피는 행위이다.
62. 정의의 의무는 사랑의 의무보다 앞서며 더 엄격하게 우리를 구속한다.
63. 그러므로 자기 것을 베푸는 일보다 빚을 갚을 의무가 더 크다. 또한 남에게 잘못한 사람이 그 잘못을 당한 사람보다 화해를 구할 의무가 더 크다.
64. 많은 일에는 정의의 두 측면이 있다. 구속하는 법의 직접적인 목적과 문구를 따르는 것은 가장 좁은 뜻의 정의라 한다. 법의 더 먼 목적과 이유를 따르는 것은 형평이라 한다.
65. 이 정의에는 두 부분이 있다. 각 사람에게 자기 몫을 주는 것은 분배적 정의이고, 각 사람에게 자기 것을 돌려주는 것은 시정적 정의라 할 수 있다.
66. 분배적 정의를 바르게 행하려면 사물과 사람을 바르게 판단하고 사물끼리, 사람끼리 합당하게 비교해야 한다. 여기에서 이른바 기하학적 비례가 생긴다.
67. 분배적 정의에 대립하는 것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는 일이다. 마땅히 돌아갈 것을 나눌 때 정당한 이유 없이 한 사람을 다른 이보다 우대하는 것이다.
68. 시정적 정의는 교환적 정의와 교정적 정의로 나뉜다.
69. 교환적 정의는 주고받는 것이 동등한 데 있다.
70. 교정적 정의는 앞서 불의가 있었음을 전제한다. 민사적 교정과 형사적 교정이 있다.
71. 민사적 교정은 주로 사안의 불의를 바로잡는다.
72. 형사적 교정은 주로 그 사람의 불의를 바로잡는다.
73. 교정적 정의에는 처벌과 반환이 속한다.
74. 처벌은 정의를 어긴 사람에게 벌을 내리는 교정적 정의의 행위이다.
75. 그 목적은 범죄자를 고치거나 억제하고, 다른 이들에게 평안을 주고 경계하게 하여 정의와 하나님의 영예를 지키는 데 있어야 한다. 신 13:11, 17:13, 19:20, 21:21.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여 너희 가운데서 그런 악을 다시 행하지 않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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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반환은 남이 부당하게 빼앗긴 자기 것을 다시 소유하게 하는 교정적 정의의 행위이다.
77. 그러므로 반환할 의무를 낳는 행위는 사랑에만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좁은 뜻의 정의에 어긋나는 행위여야 한다.
78. 이러한 불의에는 남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해당한다.
79. 사랑에 대립하는 것은 악의이다. 직접 해치려는 의도에서 비롯한 명백한 악의일 수도 있고, 행위의 의미로 보아 사실상 악의일 수도 있다.
80. 부당한 불화도 이 악의에 속한다. 그 불화가 갈라서는 데 이르면, 특히 신앙에 속한 일에서 그러하면 엄밀히 분열이라 한다.

각주

234
곧 그 사람의 영적 성장과 성숙에 속하거나 이바지한다는 뜻이다. ↩
235
그와 같은 둘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이다. ↩
236
문자 그대로 그리스어 코이노네오는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누거나 그것에 동참한다는 뜻이다. ↩
237
‘나누어 주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코이노니아는 함께 나눔을 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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