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10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고린도전서 9:7
7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6. 이 둘은 때로 분리된다. 한 사람이 소유권을 지니고 다른 사람이 얼마 동안 사용권을 가질 수 있다.
7. 이 정의는 재화를 얻고 사용하는 일에서 실천된다.
8. 재화를 얻는 일이 정의로운지는 지배권이 생긴 근거에 달려 있다.
9. 지배권이 생긴 원인과 근거를 권원이라 한다.
10. 정당한 권원에는 정당한 점유와 상속과 증여와 보수와 계약이 있다.
11. 정당한 점유는 전에는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았지만 누군가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을 합당하게 취하는 일이다.
12. 아무도 점유하지 않고 누구의 지배권 아래에도 있지 않은 것을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는다고 한다.
13. 이런 뜻에서 세상의 시작과 홍수 뒤에는 모든 것이 공통으로 주어졌다고 한다. 누구도 점유하거나 독점적으로 지배하지 않았으므로 먼저 취하거나 점유하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복도 여기에 속한다. 창 1:28. 땅에 충만하여 땅을 정복하고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홍수 뒤에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이 되풀이된다.
10 이에 저가 금 일백 이십 달란트와 심히 많은 향품과 보석을 왕께 드렸으니 스바 여왕이 솔로몬왕께 드린 것처럼 많은 향품이 다시 오지 아니하였더라
열왕기상 10:13
13 솔로몬왕이 왕의 규례대로 스바 여왕에게 물건을 준 외에 또 저의 소원대로 무릇 구하는 것을 주니 이에 저가 그 신복들로 더불어 본국으로 돌아갔더라
21. 보수는 행한 일에 대하여 갚아 주는 것이다.
22. 여기서 계약은 구속력 있는 합의에 따라 재화를 건네는 것이다. ‘네가 주도록 내가 준다’, ‘네가 행하도록 내가 준다’, ‘네가 행하도록 내가 행한다’, ‘네가 주도록 내가 행한다’라는 형태가 있다.
23. 계약에 따른 취득에는 다음이 속한다. 첫째. 일정한 값을 치르고 물건을 얻는 매매이다. 둘째. 일정한 대가를 받고 물건의 사용을 허락하는 임대이다. 셋째. 대가 없이 갚거나 돌려주기로 하고 물건을 받는 대차이다. 같은 종류의 것으로 갚는 것을 mutuum, 받은 물건 자체를 돌려주는 것을 commodatum이라 한다. 담보나 임치도 여기에 넣을 수 있다.
24. 이러한 일에는 합당한 직업, 곧 생업이 관련된다. 앞서 다섯째 계명에서 다룬 공직자를 제외하면 생업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한다. 생업은 본성상 공동의 유익에 속하며 사람은 그 유익을 향하게 해야 한다. 동시에 이생의 재화를 얻고 지키는 개인의 유익에도 속한다. 엡 4:28, 살후 3:11–12.
13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 다니고 게으를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창세기 3:10
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세기 3:19
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데살로니가후서 3:10
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26. 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선한 일을 해야 한다. 엡 4:28. 곧 하나님의 뜻과 사람들의 유익에 맞는 생업을 따르며 조용히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살전 4:11–12, 살후 3:12. 게으름과 자발적인 구걸, 헛되고 기이하거나 불결한 기술, 남의 일에 불필요하게 참견하는 일이 이에 대립한다.
28. 하나님께서 특별한 섭리로 이 일을 이끄시므로, 각 사람이 이런저런 생업에 배정된 것은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9. 신학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에 비추어 특정 생업도 그에 상응하는 뜻에서 소명이라 부르곤 한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249이 생업을 위해 하나님께 구별되는 방식이, 신자가 바르게 살도록250 또는 말씀의 직분자가 직무를 수행하도록 구별되는 방식과 같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내용이 나오지 않으며 일반 생업에 엄밀한 뜻으로 ‘부르심’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도 않는다.
30. 사도는 고전 7:20에서 부르심을 말할 때 이생의 특정한 직업을 가리키지 않는다. 할례와 무할례, 종살이와 자유는 생업이나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떤 이는 종으로, 어떤 이는 자유인으로 있을 때 부름받았다고 하여 신자들의 부르심을 그 주체에 따라 나눈다. 제24절도 부름받은 사람들이 처한 여러 상태에 따라 그 차이를 밝힌다. 또한 부름받았을 때의 상태에 반드시 머물라고 명하지 않는다. 종이 자유를 얻기를 바랄 수 있다고 허용하기 때문이다. 제21절.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부르심에 비추어 자유인과 종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것이 그의 가르침이다. 제22절.